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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Nov 26. 2021

느슨하게...

바쁜 일상을 쉬어간다는 건...


오늘 아침에 아들의 머리가 뜨거웠다. 38.4. 아무래도 감기인 것 같은데. 어제는 남편이 백신 2차를 맞고 고열로 힘들었다. 38.6. 며칠 고열로 가족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열만 내리면 학교에 가도 되나요 물으니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마음을 놨다. 모든 할 거리로 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래 요즘 정신없이 바깥 활동하느라 피곤하기도 했겠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마스크를 쓰면서 환절기며 겨울에 수시로 찾아오던 감기는 좀처럼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병원을 찾은 나는 아들의 정확한 몸무게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고. 아들의 몸무게는 30kg에 가까워 있었다. 내가 인지하는 아들의 몸무게는 25kg에 멈춰있었다. 28.8kg. 엄마의 무릎에서 진료를 받던 아들은 혼자서도 잘 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섭다고 몸을 떨지도 않았다. 아주 조금의 움츠림만 있을 뿐이었다. 아직 소아과를 찾을 나이인데 진찰 받는 공간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구석에서 진찰 대기중인 아가가 처음 보는 아들을 보며 '형아 엄청 많이 자랐다' 라고 크게 말해준다. 정말 그렇네.


아들은 엄마가 하는 음식 중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제일 좋아한다.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해주겠다고 하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라며 기분 좋게 엄마를 띄워준다. 맛있게 만들어 줘야지. 아파서 집에 있는 거지만 오랜만에 둘이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했니? 아직? 해야지. 뭘 그렇게 많이 시켰을까.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학교며 집에서 해야 할 것을 해내느라 힘들었을까. 오늘은 그 어떤 것도 했냐고 해야하지 않냐고 물어보지 않을 거다. 맛있다. 맛있어. 살짝 김이 올라오는 오므라이스를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이 마냥 예쁘다.


"엄마 오늘 누리호 발사하는 날이지? 네 시 반에 한다고 했는데?"


아들 아니었으면 지나쳤을 누리호 발사 장면을 생중계로 보면서 오랜 연구와 노력의 결실을 오늘에서야 맺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700km 고도에 도달하는 것은 달성했으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깝지만 이것도 큰 성공이기에 박수를 보냈다. 아들은 발사 카운트다운 1분을 남기고 잠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에 먹은 약 기운이 늦게 올라오는 듯했다.


잠들기 전 애니메이션 코코(Coco)를 봤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인정해 주고 응원하는 일은 축복이겠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관찰하려 했고 궁금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시선이 부드럽지 않았고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게 됐다. 칭찬도 건성으로 할 때가 많았다. 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잘 아는 내가 아이들의 관심사에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꾀나 충격적이었다.


아들은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 걸까.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십자블럭을 좋아하고 한창 검도에 빠져 있는 그런 단적인 모습들 말고... 신나서 빠져있는 그런 게 있나. 빠른 노래가 나오면 몸을 가만있지 못하고 흔들어 대는 모습에서 가끔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끼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블럭을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푹 빠져서 그리는 것도 아니고. 책을 잘 본다고 해서 독서광이라 할 만큼의 집중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피아노를 매일 치러 다닌다고 해서 음악에 감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들 딸 둘 다 좋아하고 즐기고 잘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생긴다면 난 축복해주고 응원하고 싶다.


오랜만에 바쁘게 돌아가던 시계가 느슨해지고 해야 하는 것들을 외면하면서 보낸 오늘은 일상이라 생각했던 평소 삶을 우리가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만든 그 틀에 맞춰가는 일상을 각자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널널한 시간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평소와 같았다면 오늘 누리호 발사하는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어쩌다 아홉시 뉴스에서 발사했다는 결과만 듣고 아아 오늘 그런 일이 있었네 했겠지. 바쁜 일상에 쉬어가는 오늘이 있어서 물빠진 바닷길을 걷는 느낌으로 시간의 흔적을 만지작 거려본다.



어느 사진을 보고… 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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