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으면 그냥 잠에 빠져들 것 같은데 아직 몇가지 해야할 것들이 있어서 눈에 힘을 주며 버티고 있네요. 무슨 일로 무슨 생각으로 심신을 지치게 했는지 정리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어제는 EBS 다큐프라임에서 <예술의 쓸모>를 보고는 잠이 들었는데요. 그저 '예술의 쓸모'라는 말이 좋아서 기억하고 있다 TV를 켰지요. 이날은 '아티스트'에 대해 그들에게 '예술가'에 대해 물었습니다. 보는 이들은 예술가라 칭할지 몰라도 정작 본인들은 그렇지 않지요. 좋아서 하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예술가'라고 생각하죠. 가끔 그림 그린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어 보여주면 '화가네' 하고 재미삼아 말들합니다. 난 그림을 업으로 삼고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는 아직 낯설죠. 그냥 좋아서 하는 건데 그런 것들을 혼자서만 알고 지나가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보여주기도 하고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88세의 나이에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뭉클했죠. 안하면 미칠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죠. 후회할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였죠. 할머니는 70대로 돌아간다면 뛰어다닐 것 같다며 말씀하셨죠. 그 부분에서 '아직 젊은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 접근해야 할지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 잘보이고 싶어서도 아니며 무엇이 되겠다는 독한 마음도 아이었던 이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예술가'죠. 어떤 시선이 나를 따라오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어제 봤던 <예술의 쓸모>에 대한 나의 탐구는 끝나지 않았더라고요. 나에게 맞는 도구로 표현에 자유를 허용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어떤 타이틀도 필요치 않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은 늘 그런 생각을 어리다 말하니까요.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바로 그거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벌이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병행하죠. 그게 무엇이든 말이에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깊게 하고 있는 중이에요. 나의 그림을 그리며, 나의 글을 쓰며, 나의 글씨를 마구 휘갈기면서도 또다른 무엇으로 먹고살 궁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두 다리가 첫째 둘째에게 잡혀 있는 처지지만 곧 나도 돈이란걸 다시 벌어보자는 마음 하고 있거든요.
매일 둘째 꼬맹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실천을 하려고 공동체에 들어갔죠. 별거 없고 그저 읽은 책 공유하고 오늘 했다는 인증만 남기면 되는 건데도 이상하게 못하게 되는 날이면 꼭 해야만 하는 걸 안 한 것처럼 마음이 무겁죠. 시골생활 며칠은 못 했으니 서올에 올라와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에요. 인증된 그림책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뭔가 아이를 위해 한 것 같고 기분이 좋아져요. 책을 아주 멀리 두지는 않았던 아이라 아주 조금의 노력에도 크게 반응하더라고요. 그 힘으로 하루하루 책을 쌓아가며 이런 나라도 갔다가 저런 나라도 갔다가 놀아보는 거죠. 따라와주니 고맙죠.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이마트에 잠시 갔었어요. 코로나 4단계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미술 수업을 취소해야 했거든요. 가을학기 개강은 9월 초라는데 할 수 있을지. 맛있는 거라도 사먹자는 생각으로 마트에 들어섰고 신나게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웠어요. 물가가 오른 건지 내가 비싼 걸 고른 건지 정말 10만원으로 냉장고는 그리 많이 차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간간이 꺼내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사왔으니 며칠은 입이 궁금하면 냉장고만 열면 될 것 같아요. 돌아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쥐어줬는데 세상 행복한 모습의 아이들이라니.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지금 노트북 옆에 놓인 책을 봤는데요.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란 책입니다. EBS 다큐에서 방송을 했었는데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고 졸업하는 커리큘럼이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던 대학이었죠. 대학 4년제의 목표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적어도 98학번이었던 제가 다니던 캠퍼스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세인트존스 대학교의 이러한 공부 방법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이를 통해 어떤 인재들이 양성될지도 궁금했습니다. 제 아이들이 아니라 언어만 된다면 기회가 된다면 제가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끌렸습니다. 알려고 하는 욕심은 많으나 그 또한 시간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거든요. 붓한번 들기도 힘든 요즘입니다. 하하.
세상이 변하고 나의 생황이 전과 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지향하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식이 방법이 되고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은 아니라 해도 알려고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건 확실합니다. 늘 공부하는 자세 그 지루함을 이겨내는 정직함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나만의 통찰력은 삶을 풍성하게 해줄 거란 확신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조용하지만은 않았던 오늘이었습니다. 나의 하루가 꽤 괜찮은 생각들로 채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졸려서 이제 잘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