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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3. 2021

엄마는 몰라

무엇이 서러워서 그리 울었을까. 막을 생각도 없었지만 참으려 하면 할수록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금방 턱에 메달려 똑똑 떨어진다. 아주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어떤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오빠는 시골집 배밭에서 엄마 아빠와 나는 호박밭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열흘 넘게 호박밭에 머물며 지내던 엄마가 오늘 밤은 시골집에 들어가 주무시겠단다. 너무 반가워 나도나도 따라나선 딸은 그저 엄마랑 함께 머무는 고향집을 생각하며 들떠있다. 소형 트럭 운전을 멋지게 하는 우리 엄마는 구부러진 시골길을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질주한다. 기분 좋은 바람 행복한 순간을 엄마랑 함께 하고 있어 너무 좋았다.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고 나도 씻고 엄마도 씻고 한시간은 넘게 휙하고 지나간 듯하다. 글쓰기 줌미팅이 있어서 뭐라도 할 말을 만들려 머리를 굴리는 찰나. "은하야 시원한 맥주 한잔 할까? 오빠 편의점 다녀올게." 좋지한다. 딱 한잔만 마시고 기분 좋게 할일 하려는데 거기서 내 속마음이 민망하게 들어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가 깍아준 수박과 복숭아가 예쁜 모양은 아니지만 접시 가득 반짝거렸다. 맥주잔에 시원한 맥주를 집어드는데 새언니 이야기가 나왔다. 늦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한 큰오빠는 다음달이면 아빠가 된다. 기존에 살던 서울집 근처에 살던 빌라를 팔고 최근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오랜시간 같은 동네에 살며 의지도 많이 됐었는데 떠난다고 하니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니 이제는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우리 새아가. 예쁜 새아가. 복덩이. 그런 새아가는 엄마에게 참 잘한다. 말을 예쁘게 잘한다. 엄마 아빠에게 말 만큼은 참 잘 한다.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다. 결혼후 큰 오빠는 예전만큼 우리집을 찾지 않았고 같은 동네면 왕래하며 가족처럼 챙겨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결혼 후 오빠는 우리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왜 큰 삼촌이 우리집에 오지 안냐며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가정이 생겼고 새사람과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는지 그랬다. 나중에 들으니 좋아서 한 결혼이지만 중매로 결혼해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오빠도 언니도 무척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옆에 살고 있는 나는 결혼 전과 같은 오빠의 행동을 바라는 아주 얄미운 시누이가 됐나보다. 꿈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그런 과정에서 난 어떤 관계든 거리가 필요하고 오빠는 이제 나의 오빠가 아니라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알아야했던 거다.


엄마의 새아가 칭찬이 무르익어가는데 내가 그만 좀 하라고 말을 잘랐다. 일 잘 하는 우리 딸, 엄마 힘들 때 내려와 일해주는 딸. 우리 예쁜 딸, 우리집 복덩이. 난 이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꿈에도 사랑스럽다는 말을 전해듣지 못했다. 나 시집가던 날 우리 엄마는 울지 않았다. 아빠도 울지 않았다. 시원했다고 한다. 나이든 딸이 시집 가는 게 왜 슬픈 일이냐며 잘라 말하신다. 난 시집에서도 '새아가' '우리 예쁜 새아가'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고 엄마가 새언니에 대해 그렇게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비교의 한숨이 터져나온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기분이 좋았다가 엉망징창이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마구 터져나오는 서운한 말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 엄마 입을 막았고 급기야 등을 돌려 앉는 엄마는 화가 많이 났나보다.


결혼을 하지 않는 오빠들 때문에 우리집은 근 10년을 무척 힘들게 보냈다. 틈만나면 서울로 전화해 오빠의 결혼 문제 때문에 아빠랑 싸운 이야기며 매번 어그러지는 중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원망하는 소리를 매일 매일 꿈에서도 들어야했다. 오빠의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동생이라며 나도 똑같은 나쁜년으로 매몰됐다. 그 상처는 어루만져주지 않은 체로 우리집에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새아가였다. 언니에게 잘하는 부모님, 정말 좋다. 나쁜 시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내가 두손 두발 벗고 나서서 뭐라 했을 거라며 난 우리집에 들어온 새식구를 홀대하고 딸인 나만 예뻐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저 내 안에서 예쁜 새아가가 될 수 없는 나와 복덩이가 될 수 없는 딸이 누군가의 며느리인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새언니를 비교하며 일어나는 내 안에 투쟁일 뿐이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고 흐느끼며 듣는 트로트가 있는데 송해 선생님과 유지나 가수가 함께 부른 <아버지와 딸>이다. 가사말 안에 나도 없고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다. 그저 나를 시집 보내던 날 우리 아빠는 이런 마음이었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이는 거다. 딸을 시집 보내며 울어주는 아빠, 시집가서 자신 처럼 고생할까 마음써주는 엄마 난 그런 감동 씬은 없었으니 노래를 들으며 대리만족하는 걸까? 한번 울어주지 그랬어요. 그 감동으로 평생을 살아갈 딸을 위해 그정도 선물은 해주지 그랬어요.


https://youtu.be/YDPA65HVk2U



#그저서운해서투덜거리는아침

#그럴것도없는데마음이우째이리도작을까

#결혼식날딸을위해울어주는아빠

#자신과같은인생을할까마음써주는엄마

#내가잘살고있으니그런마음이들일도없겠지

#그래도서운한딸은아침에일어나이렇게글을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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