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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3. 2021

흙으로 만든 아이

흙으로 만든 아이가 있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몸의 많은 부분이 불편했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몸통과 붙어 있는 팔과 다리는 아주 조그만 충격에도 달랑거렸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질 때마다 바닥에 있는 작은 돌들이 아이의 몸에 박여 자국을 남겼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멋지게 착지하며 균형을 잡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며 춤추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침에 만나 해가 떨어질 때까지 친구들과 뛰어놀며 하하호호 행복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흙으로 만든 아이는 매일이 축제처럼 즐거웠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무언가 가슴에 채워지는 걸 느꼈다.


어느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흙으로 만든 아이는 엄마에게 아빠에게 가슴에 생긴 구멍에 대해 설명했다. "친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줬어. 곧 돌려준다고 했어." 흑으로 만든 아이는 그것이 배려라 생각했고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데 마냥 행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친구는 흙으로 만든 아이의 일부를 돌려주지 않았고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엄마는 최대한 비슷한 흙을 구해 아이의 텅 빈 가슴을 채워줬다. 아이의 가슴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굳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고 또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느껴봤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아이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완벽한 몸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몸이 완전히 굳은 후에도 깨질 위험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았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닐 테니까. 같은 아픔을 다시 느끼는 것보다 그런 아픔이 더이상 큰 일이 아니게 될까봐 아이는 그게 더 두려웠다. 단단해진 몸 만큼이나 마음도 그렇게 단단해질까봐 그게 더 두려웠다. 그리고 그 아픔을 만져주고 고쳐줄 함께할 누군가 더이상 옆에 없을까봐 그것이 가슴 아팠다.





공사가 한창인 배밭에서 찰흙을 구할 수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것만큼의 끈기는 없었지만 물을 살짝 뿌리면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초등시절 학교에서 찰흙을 가져오라 하면 읍내에 나갈 수 없었던 나는 집 주변에서 찰흙을 구해 봉지에 넣어 가지고 갔었다. 창피스럽게 나만 그런 걸 가지고 온 것 같아서 속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엄마의 라떼 이야기를 들으며 아들과 나는 두손을 호호 불어가며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이게 굳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 햇볕이 드는 곳에 살짝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나와 보니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말았다. 팔은 바닥에 나뒹굴고 사람 몸에 박힌 잔돌들이 자국을 만들었다. 아쉬움에 다시 물을 묻혀 팔도 붙이고 박힌 돌도 떼어냈다.


아이는 가끔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 부모를 놀래킬 때가 있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괜찮다 말할 때가 있다. 또 가끔은 그런 경험으로 어느 때보다 강인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대수롭지 않다며 처음의 경험과는 다르게 두번 세번의 경험은 아이를 더욱 성장시킬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부모의 앞선 경험은 가끔 아이의 경험 앞에서 미리 걱정하는 불안을 만들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런 모습이 보일 때마다 뒤로 물러서려 애를 쓴다. 사실 그게 쉽지 않다. 몸만 커지지 않고 마음도 커질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조금더 기울이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미리 걱정하는 것만 하지 않아도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고 바라봐줄 수 있을텐데...




#흙으로만든아이는오늘도단단해지고있다

#그옆에엄마는불안한마음으로걱정을삼킨다

#제발그것만하지말자고마음을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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