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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17. 2021

시골집에 오면...

시골에 오면 하늘을 많이 보게 된다. 시야에 걸리는 건 산이요 키가 큰 옥수수 수술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파트며 높은 빌딩들 뿐인 도시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우리 동네에는 한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데 사방이 산이었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만한 입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시골집에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간 남편은 에어컨을 켜고 TV를 보며 ‘이곳이 천국이구나’ 생각하겠지. 시골집에 있는 나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곳은 없구나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은 호박밭에 설치한 간이 수영장에서 지금까지 놀다가 방에 들어와 채널을 돌려가며 TV 삼매경에 빠져있다.


문뜩 시골에 오면 무엇이 좋은지 생각해 본다. 우선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넓은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다. 눈을 쉬게 하고 초록을 많이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그 초록 에너지는 온 몸으로 흡수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멀리 보는 것에 대해 권하곤 한다. 이런 습관은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니 시중에 눈에 좋다는 여느 영양제 보다 훨씬 효과적이라 하겠다.


다음으로는 폭염의 여름 날씨에도 열대야가 없다는 거다. 난 산골에서 태어났다.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진 첩첩산중 바로 그런 곳이다. 언제부턴가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지은 전원주택이 늘어나고 펜션이 들어오고 캔핌장이 생기고 그야말로 주말에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되었다. 이 마을의 장점은 해가 산을 넘어가는 순간 찬바람이 분다는 거다. 새벽에도 열대야 때문에 고생스럽게 잠들어야 하는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집 새벽 공기는 이불을 끌어안고 잠들 정도로 찬 바람이 새어들어온다.


또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과 공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건데 TV 보는 것 때문에 실갱이는 있을지언정 학습에 대한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시골집 주변이나 밭 근처에 있는 길을 걸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장난을 칠 때도 좋고 먼 산을 보면서 초록이 얼마나 예쁜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참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마당에 나와 서로의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얹을 수 있게 한다. 자연의 언어가 대화의 주제가 된다는 건 참 훌륭하고 따뜻한 일이다.


하지만 편하기로 따진다면 서울집만큼 편한 곳이 또 어디있을까. 화장실이 실내에 있어 언제고 사용할 수 있는 서울집과는 다르게 신발을 신고 나가야만 대소변을 볼 수 있는 이곳 생활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낮에는 밭에 있는 창고에서 생활을 하는데 밭에 가서 오줌을 싸고 호미로 구덩이를 판 뒤 응가를 한다. 오늘 밭에는 아이들의 응가 무덤이 두개나 생겨났다. 자신의 응가 무덤에는 풀이 아주 잘 자랄 거라며 자랑하듯 말하는 꼬맹이다.


아이들이 내려와 북적거리니 엄마 아빠도 덩달아 신나보인다. 서울에 있는 남편은 집에 돌아와 맥주 한잔 하며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난 시원한 곳에서 아이들과 잠들 수 있는 여름을 선물 받았다. 시골에 내려 온 날 유리잔이 깨지면서 율의 발에 상처가 났고 더이상의 물놀이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아이는 서울과 시골 중 시골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덕분에 밭 근처 도로에서 산책을 하다 오랜만에 아이를 등에 엎고 두러두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엄마? 나 무겁지?' 하고 물어보는데 무거운 것 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 감사했다.


산동네에서 태어난 게 부끄럽고 싫었던 나, 부모님이 농사꾼이어서 창피했던 나, 그러기에 늘 검게 그을린 얼굴이며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풀물이 든 손이 더럽다 생각했던 나. 지금은 그런 자연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고 우리 아이들이 그런 자연을 만나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주일 뒤 아이들은 그 전과 다르게 많이 성장해 있을 것 같다.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지만 어떤 감사한 마음을 또 발견해 글로 옮기게 될지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여름에 시골집에 내려가 있으면서...)




#나는시골에서태어났다

#아이들은가끔시골집에내려간다

#가끔그곳이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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