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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Feb 21. 2022

생각의 단서

나의 관심과 생각이 나의 글에 진한 흔적을 남기듯이 아이의 글과 그림에서

나의 글은 내 일상을 그대로 찍어낸 판화와 같다. 관념적인 글이 쓰이는 날은 생각이 많았던 날이고 어느 책의 구절을 옮긴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통해 감명받은 날일 것이다. 그러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는 날이면 며칠 동안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짜내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이 많아져 글로 비집고 나왔을 것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수록 글은 진지해지고 나의 본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바람과 실천의 소중함 사이에서 그럴 수 없는 현실과의 마찰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나만 생각할 수 없다. 나 자신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컸던 2021년을 지나고 새해를 맞으면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무엇을 어떻게 신경 써야 할까. 생각이 많았다. 모든 게 중요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두루두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정작 관심 있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없고 모든 걸 잘하기 위해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초등 학년 때는 독서만 신경 쓰면 된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오빠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꼬맹이는 무얼 어떻게 신경 써야 할까.


아들이 2학년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독후 활동 노트를 가져왔다. 독서 목록을 채웠고 읽은 책으로는 독후 활동의 명목으로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하니 2학년 한 학년 동안 아이는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매일 일기를 썼고 학교에서 하는 독후 활동 노트를 빽빽하게 채웠으며 여름방학 때 시작한 독서록도 노트 한 권을 거의 채워가고 있다. 독서나 글쓰기 못지않게 그림 그리는 시간을 즐겼던 아이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쉬는 시간이 짧아지고 거의 없다시피 한 날이 많아지면서 전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낱장 도화지를 사줬는데 어느새 다 쓰고 없었다.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는지 소중한 보물 다루듯 책상 아래 박스를 만들고 간직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에 나무를 잘 기르기로 알려진 곽탁타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를 많이 맺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아는 건 나무의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합니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뒤는 버린 듯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는 우종영 작가는 자신의 딸을 대하는 방법도 나무와 같이 했던 모양이다. 그런 마음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는 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결국 서로를 연결시키는 신뢰를 만들었다 생각하게 된다.


아들을 알고 싶을 때마다 아이가 쓴 글을 들여다본다. 아들과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고 있는 그것들을 들여다볼 때면 그 안에서 진심이 보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복잡한 그림을 그리며 만족스러워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그런 그림을 즐기고 있는 이 아이는 흥미를 느끼는 것에 집중할 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해 보인다. 엄마의 강요로 관심을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당나라 곽탁타라는 사람이 나무를 대하듯 나도 그렇게 본성을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게 그저 지켜봐야 할 텐데. 최소한의 간섭과 관심을 보여야 할 텐데 그러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나의 관심과 생각이 나의 글에 진한 흔적을 남기듯이 아이의 글과 그림에서도 그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제야 느끼고 있는 내가 최소한의 관심으로 아이의 본성을 살려낼 수 있을지 절제와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또 이렇게 그 다짐을 해보고자 생각을 기록해 본다.



아들의 그림



#방임이아닌방목으로

#원하는것에집중할수있는시간을줄것

#모든걸함께할수없다는것에아쉬움을갖지말자

#모든걸다잘할수는없다

#뭐라도좋아하면지켜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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