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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Mar 04. 2022

오빠와 동생

그래도 오빠는 동생을 챙기고 동생은 오빠를 따른다.

갑작스럽게 치과에 가야 했던 어제. 아들의 작은 어금니에 씌운 크라운의 바닥이 동그랗게 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 상태만 확인하는 거라고 안심시키고는 오후 두시경 진료 예약을 잡았다.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기 때문에 이틀 나가면 힘들다며 하루 쉬겠다는 꼬맹이도 오빠와 치과에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버스도 타고 눈 구경도 할 수 있다니. 꼬맹이는 집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반면 아들은 치과에 벌써 와있는 기분으로 시름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 마음은 잘 알겠다. 이가 워낙 약했기 때문에 치과 치료를 많이도 받아야 했던 아들에게는 치과에 가기 전부터 고통이 시작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구치가 거의 다 올라온 상태라 크라운 교체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치료 없이 구강검진만 하고 치과를 나설 수 있었다. 의자에 눕는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더니 조무사 선생님이 계속 눈물을 닦아 주시며 안심을 시켜주신다. 그런 오빠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꼬맹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비에 나가 앉아있자고 하니 극구 오빠 옆에 있겠다고 말한다.


진료가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엄마와 한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나 오빠랑 쓸래."라고 말하고는 오빠 우산 속으로 쏙 뛰어든다. 아들은 자연스럽게 동생의 손을 잡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 온갖 웃음소리가 우산 밖으로 간드러지게 빠져나온다. 혼자 우산을 쓰고 가는 나는 손이 가벼워져 물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가만히 보니 꼬맹이는 머리 위에 쌓인 눈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우산은 오빠 혼자 쓰고 꼬맹이는 연신 웃어대느라 우산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도 좋단다.


대출 도서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정류장을 막 떠나고 있었다. 15분은 기다려야 하는데. 일단 걷자. 밖에 오랫동안 나와 있으니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꼬맹이와 둘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리 아프다' '춥다' '졸리다' '못 가겠다' 등 다양한 이유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을 텐데 이날은 빠른 속도로 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빠 덕분이다. 오빠가 함께 걷고 있어서 꼬맹이는 신이 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물살을 타며 앞으로 미끄러지는 청둥오리들이 꼬맹이를 끌고 내달렸다.


오빠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하고 싶고 오빠 물건은 꼭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꼬맹이. 집에 있을 때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가끔은 둘도 없는 원수처럼 애증관계에 있지만 밖에 나오면 그래도 오빠는 동생을 챙기고 동생은 오빠를 따른다.


나에게도 오빠가 있다. 큰 오빠. 작은오빠. 큰 오빠가 결혼하기 전 둘은 한집에 살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우리 셋이 한집에 살았다. 오빠들은 가끔 들렸고 오며 가며 나를 챙겼다. 오빠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좋았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소복이 쌓이고 나니 우린 어느새 서로를 챙겨주고 걱정하며 위로하는 중년이 되었다. 오빠들은 나를 보며 생각하겠지. 꼬맹이가 벌써 중년이라니... 반대로 난 오빠들을 보며 오빠들의 나이 듦에 대해 벌써 이렇게 됐네 생각한다. 오빠들이 없었다면 너무 외로웠을 것 같다. 조금 전에는 아직 장가들지 못한 작은 오빠에게 페이스톡을 했는데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하고 말하니 코를 찡긋거리며 허허 웃는다. 새삼 눈물이 맺혔다. 많은 사람들과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가족만큼 서로를 그리워하며 위로하고 안타까워하며 가슴 아파 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들. 또 나의 일에 나보다 더 기쁘다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 너무 사랑한다.


아이의 마음이지만 오빠를 대하는 꼬맹이도 꼬맹이를 대하는 오빠도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길 바란다. 아니 그러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힘들 때는 진심으로 마음을 알아주고 기쁠 때는 내 일처럼 축하해 주고 가끔이라도 불현듯 생각나서 전화해 '보고 싶어 전화했어' 말해주길 바란다.


눈길을 걷는데 꼬맹이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 좋은 친구 어디 또 있을까 싶어 괜스레 생각이 깊어졌다. 부부의 인연도 참 하늘이 내렸다 생각하지만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간의 인연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만남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빠와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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