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아직은 말했으면 좋겠다.
아들이 며칠 동안 노로바이러스 장염으로 아팠다. 새벽 두시경 증상이 나타났고 구토가 심해 급기야 응급실까지 가야 했다. 아이는 같은 증상을 여러번 경험했었다. 잘 자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분수처럼 구토를 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 속에 있던 무언가 식도를 타고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에 적잖이 놀란 아이는 아픈 것보다 그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구토를 느낄 때마다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분명 전과는 달랐다. 토할 것 같은 것을 감지해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빠르게 이동했다. 아들의 순발력보다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 바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꽤 침착한 행동을 지켜보면서 난 안심할 수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어떤 증상이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니 엄마는 그저 그 아픈 곳을 만저주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며 경과를 묻고 또 물을뿐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가 진료 순번을 기다리는 때에도 칭얼거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하니 알았다며 좀 눕고 싶다고 했고 방송으로 호명하면 신발을 신고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링거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 팔을 내밀었고 잠에 취한 상태이기는 하나 시간 반 정도를 묵묵히 견뎌냈다.
집에 돌아와 며칠을 간편식으로 먹어야 했는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 수도 있겠으나 불평은 하지 않았다. 죽만 먹다가 처음으로 계란과 소시지를 주던 날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한 끼의 소중함을 알 것 같아." 며칠 몸이 아팠고 생활은 불편했지만 한 끼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밥과 소금만 있으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몸소 보여줬다.
오빠가 아픈 동안에 옆에서 줄 곳 함께했던 꼬맹이는 오빠와 같은 병명으로 어제 오늘 죽만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입으로 무언가 올라오는 걸 처음 경험한 꼬맹이는 예전에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구토의 조짐이 있으면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나 무서워." 오빠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병원에서 꽤나 담담한 모습을 보여줬다. 링거를 맞을 때도 바늘 들어가는 것은 무섭다 하더라도 긴 시간을 버틸 줄 안다. 죽만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얼마나 아프면 떼도 한번 안 써 보고 고개를 끄덕일까' 싶은 거다. 잠을 자려는데 눈물이 글썽거리는 표정으로 자기 옆에 와서 앉아 달라고 부탁한다. 구토를 느꼈는지 무섭다며 말이다.
아이가 아프고 나면 훌쩍 큰 것 같다며 말할 때가 있었다. 크려고 그런다면서... 그런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통을 익숙하게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정도 아픈 거는 견딜만하다는 것과 약을 먹고 좀 쉬면 다시 괜찮아진다는 걸 알면 두려움은 그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험이 쌓인다는 건 충격을 흡수하는데 필요한 마음의 근육이 단련되고 튼튼해지는 거겠지.
그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아직은 말했으면 좋겠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왈칵 눈물을 쏟으며 안겼으면 좋겠다. 엄마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니까 가능했던 것들이 차츰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벌써 그랬던 순간들이 그리워질 것 같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내 작고 소중한 아이들이 부쩍부쩍 커가는 것이 보람이기도 하지만 이 순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도 동시에 일어나는 게 어쩌면 이리도 당연하다 생각될까. 어린아이들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
** 글 내용과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떠올라 추가해본다.
#네살아들아네가그립다
#네살딸아네가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