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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서툼의 시대

사랑보다 실적이 먼저였던 세대의 초상

by 손린

(이도현 시점)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숨이 막히는 건 사람 때문이었다.
모두가 바쁘게 걸었고, 나만 느리게 사는 것 같았다.


대구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났던 나는,
서울의 한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줄 알았다.
‘이제 인생은 펴질 거야.’
하지만 서울은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비싼 차를 몰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
유학을 다녀온 동기,
그리고 ‘서울 토박이’ 특유의 여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대구에서는 ‘천재 도현이’라 불렸지만,
서울에서는 그런 이름이 통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공부는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부모의 배경, 정보, 언어 습관까지—
이미 세상은 다르게 세팅되어 있었다.
나는 열심히 했지만, 늘 한 발 늦었다.


명문대만 졸업하면

대기업이 “어서 오세요” 할 줄 알았다.
그건 세상이 우리에게 속삭인 환상이었다.
졸업 후 수십 번의 공채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스펙’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그때 나는 또다시 ‘공부로 숨는 법’을 택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기회가 생길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거기서도 비슷했다.
교수는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았고,
나는 새로 부임한 괴팍한 교수 밑에 배정됐다.
비위를 맞추며 밤새 보고서를 쓰는 게 일상이었다.


석사를 마치고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연구직 준비 중’이라 둘러댔다.
두 해 뒤, 대기업 경력직 공고가 났을 때
나는 그야말로 모든 걸 걸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울었다.
‘이제는 성공한 거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꽃가마가 아니라, 전쟁터였다.
지방 공장으로 발령이 났고,
동기들은 모두 서울 본사였다.
그 차이는 15년이 지난 지금,
집값으로, 삶의 무게로,
아주 명확한 격차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대출이자를 갚고,
아이는 사교육비로 휘청이고,
회사는 나에게 효율과 성과를 요구했다.
사람보다 시스템이 더 익숙해졌다.


서른여섯을 넘기며 결혼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내 안의 ‘나’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감정은 훈련되지 않았다.
기계처럼 결정을 내리고,
말 대신 숫자와 보고서로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서툼의 시대’의 산물이었다.
감정을 배운 적 없는 세대,
사랑보다 성적, 마음보다 실적을 먼저 배운 세대.
그게 나였다.


서른을 넘어도 나는 여전히
감정 앞에 서면 말이 막혔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서툴러서 미안해.”

그 말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건 나에게 향한 말 같았다.


나뿐 아니라,
서툼을 배울 기회조차 없이 자라온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쁜 사람도,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서툼을 배울 기회조차 없이 자라온

세대였을 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의 서툼은 개인의 잘못일까,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오늘도 회사로 돌아간다.
회의와 보고서가 기다린다.
그리고 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햇살 아래, 신호등 앞에서 웃던 그 얼굴.


그녀는 내게 말했다.

“서툴러서 미안해.”

나는 마음속으로 답했다.

“나도, 서툴러서 미안해.”


우리는 그렇게,
서툰 마음으로 서로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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