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옳았지만, 한번도 따뜻하진 않았다."
(이도현 시점)
그녀가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업무 보고서를 제출할지, 회의에 들어갈지, 점심은 뭘 먹을지.
내 하루는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결단을 내리는 건, 내게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그건 아버지에게서 배운 습관이었다.
아버지는 법원에서 일하셨다.
판사는 아니었지만, 판사처럼 말하셨다.
늘 단정하고, 모호한 대답을 싫어했다.
“확실히 말해라.”
그 말은 집 안의 규칙이자,
나를 만든 문장이었다.
감정보다 명확함, 말보다는 행동. 그게 우리 집의 언어였다.
어머니는 보험 판매왕이었다.
아버지 대신 가족을 지탱했고,
동생의 공부까지 책임졌다.
나는 늘 그 틈에서 ‘괜찮은 아들’로 남아야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나는 논리와 유머로 세상을 버텼다.
어릴 적 내 왼쪽 눈 주위엔 붉은 반점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걸 없애려고 병원을 전전했다.
레이저를 맞을 때마다 울음을 참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왼손으로 눈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쓰는 버릇도 그때 생겼다.
누가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면
왼손이 먼저 반응했다.
대구의 햇살은 언제나 뜨거웠고,
나는 늘 그 빛을 왼손으로 가렸다.
그게 나의 습관이자, 방어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 있었다.
말로 싸우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빠르고 냉정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진짜 남자’로 통했다.
하지만, 감정 앞에서는 달랐다.
특히 그녀 앞에서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는 게 힘들었고,
감정의 질문에는 언제나 논리로 대답했다.
“왜 확실히 말 안 해?”
아버지의 말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그래서 나는 사랑에서도 확실하려 했다.
애매함이 싫었다.
하지만 그 확실함이, 언제나 늦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익숙했지만,
감정을 말하는 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발 늦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조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결정을 내렸던가.
그리고 그중 얼마나 많은 감정을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해 왔던가.
사람들은 나를 ‘신중한 남자’라 말하지만,
사실 나는 감정의 문턱 앞에서
언제나 도망치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