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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녀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 문장이, 멈춰 있던 시간을 흔들었다."

by 손린

(이도현 시점)

점심을 마치고 회사 앞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한여름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고, 도시의 소음이 멀게 느껴졌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이어폰을 빼며 천천히 돌아보았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긴 챙의 모자를 눌러쓴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내가 서툴러서 너를 아프게 했어.
다시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어.”


그 말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래된 상자 하나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안쪽에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시절의 나,
자존심과 서툰 마음 사이에서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던 얼굴이 있었다.


나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어색해서,
그저 그대로 서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신호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졌다.
오후 회의 내내,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하지 못했던 모든 말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왜, 지금에서야 그 말을 해야 했을까?


그녀의 말이 내 안을 흔들고 간 뒤,

나는 다시 평소처럼 회의에 들어가고, 보고서를 쓰고, 결정을 내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루를 버텼지만,
마음 한켠이 묘하게 낯설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익숙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의 한마디가 내 안의 논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 앞에서 서툴러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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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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