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렀던 사회 속에서 품위를 배운 이야기.
(최나은 시점)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에 다니던 내 학교를
사람들은 부산 사투리로 “따라지 학교”라 불렀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이름을 찾고자 애썼다.
성실함 하나로 버텼고, 교수님은 나를
“참 착하고 부지런한 학생”이라 불러주셨다.
IMF가 지나갔지만, 세상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졸업 후 나는 취업 시장을 떠돌았다.
교수님이 소개해준 첫 회사는 작은 무역회사였다.
“내 친구 회사니까, 면접 한번 봐봐.”
그 사장은 면접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서 나는 확신했다.
정으로 시작한 일에도, 품위는 필요하다는 걸.
합격이었지만, 가지 않았다.
그건 불순한 거절이 아니라, 나의 첫 경계였다.
교수님에게 세상은 ‘정’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나에게 세상은 공기와 태도로 나뉘어 있었다.
서울의 면접은 다를 거라 믿었다.
젊고 자신감에 차 있는 사장은
“중소기업이지만 그룹 계열사예요”라며 회사를 자랑했다.
복지가 좋고, 비전이 있다며 자신의 회사를 칭찬했다.
그러다 내 얼굴을 잠시 훑고 말했다.
“그래도 많이 다듬어야겠어요.”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식었다.
그의 세계에서 나는 아직 미완의 존재였다.
다듬어야 하는 사람, 고쳐야 할 사람.
그 말의 온도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이미 ‘위’와 ‘아래’가 정해져 있었다.
며칠 뒤, 나는 합격 전화를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라는 거짓말을 했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그의 세계 안에서 나는
‘완성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고 싶었다.
그다음 면접의 사장은 더 노골적이었다.
내 이력서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했나?”
나는 숨이 막혔다.
“IMF라서 형편이 어려웠어요.
장학금 받을 수 있는 학교로 갔어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당황해 휴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마치 다독이듯 말했다.
“마음이 여려서 어떡하냐. 내가 잘해줄게.”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보살펴줄 대상’으로 나를 규정하는 말이었다.
며칠 뒤, 그는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회사 오면 잘해줄게. 후회 안 할 거야.”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이미 다른 회사로 결정됐어요.”
그건 회피가 아니라 마지막 존중이었다.
그가 만든 서열의 세계 안에서,
다듬어지는 대신 나는 침묵으로 나를 지켰다.
결국 나는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월급은 밀렸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6개월 후, 노동청에 신고해서
밀린 월급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세상은 실적보다 품위를 배우기 더 어려운 곳이라는 걸.
그 후로 나는 방향을 바꿨다.
사람이 먼저인 곳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학원으로 취업 전선을 옮겼다.
작고 평범했지만,
아무도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다듬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숨 쉴 수 있었다.
그와의 첫 만남이 내 인생의 또 다른 서툼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15년이 흘러, 나는 다시 그를 마주했다.
품위를 지켜낸 시간 끝에서, 내 안의 기억이 다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