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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썬 Jun 30. 2021

마치 축제 같았던 미국에서의 첫 시위

UCSC Wildcat Strike 2; 예상치도 못한 시위 현장

    "나 잡혀가는 거 아니야...?"

    "괜찮아. 그러면 내가 너 데리고 빨리 도망갈게."


    처음 시위현장으로 가던 날 린다랑 나눈 대화다. 실제로 경찰들이 학교 곳곳에 위치했고 몇몇 사람들은 잡혀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 겁이 났다. 나는 국제학생이라 어쩌다 경찰에게 잡혀가 이 일로 비자가 취소되면 단순한 호기심과 괜한 정의로움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신분이었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남의 나라 사회 한 번 바꿔보려다가 아니, 그 변화의 물결에 고개 한 번 기웃거리다 사고 제대로 치는 것이다. 사실상 나를 지켜줄 사람도 없었다. 학교의 정문 즉, base라고 불렸던 시위현장까지 가던 길, 내 심장은 불안함과 설렘으로 미친듯이 콩닥거렸고 누가 봐도 나는 잔뜩 상기된 채 벌벌거리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시위는 그런 이미지다. 열정과 뜨거움, 땀과 눈물, 아픔과 희망. 그래서 시위현장을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주저했다. 감당하지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어서. 언어, 문화, 환경, 상황이 다르더라도 같은 인간이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 주고받는 무언가가 있을 게 틀림없을 테니까. 하지만 base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예상과 굉장히 다른 공기의 흐름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고 생각지도 못한 컬러풀함이 내 눈앞을 지나다녔다. 얼핏 들으니 노랫소리도 들린 것만 같았다. 이게 뭐지? 린다랑 나, 우리 base 잘못 찾아온 거 아닐까? 워낙 넓은 학교니 base는 다른 곳에 있는 거 아닌가?

시위현장에 울려퍼진 Happy Birthday 노래. 세상에서 가장 뜻깊은 생일이었을 누군가를 위해 모두 노래했다.

    Nope. 우린 잘 찾아갔다. 하나밖에 없는 정문에 있는 base인데 잘못 찾아갈 리가 없다. 아니, 그러면 누가 대체 시위현장에서 저렇게 평화롭고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영상 속 모습만 보면 그냥 피크닉 나와서 햇빛 쬐는 사람들끼리 캘리포니아 특유의 여유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피켓을 들고 한 무리가 신호등을 건널 뿐. 그리고 바닥 곳곳에 피켓이 있을 뿐. 생각지도 못한 이미지에 머리가 얼얼해지는 충격을 받았던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생일의 주인공을 위해 남들따라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쳤다. 어딘가에 홀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처음 느껴보았다고나 할까.


Base에서 먹은 타코와 피자. 무료로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은 한동안 나의 최애 점심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무료로 밥과 간식 또한 제공해줬다. 사진처럼 뷔페식으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던 날도 있었고 피자나 부리또 등을 준 날도 있었다. 어찌 됐든 시위현장의 넓은 잔디밭에 앉아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사람도 만나고 세상도 구경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보냈던 것 같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base를 들리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인 린다 역시 예상치 못한 풍경에 꽤나 놀랐었는지 나에게 우리 어떻게 뭐해야 하냐고 되려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점이었다.


Strike에 대한 전단지. 그들은 그 흔한 포토샵으로 만든 포스터 대신,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적은 글을 프린트하였다.

    멀뚱멀뚱 앉아있으면서 두리번거리니 시위의 임원진으로 보이던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전단지를 건냈다. 자신들은 누구인지, 왜 이 시위를 하는지, 어떤 세상이 밝아오길 바라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담은 종이 한 장이었다. 전단지를 받으니 비로소 내가 무언가 하나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중요한 의미를 담은 일이었다. 슬쩍 미소를 비추고는 떠나려는 분께 내가 무얼 해야하는 지 물었더니 그녀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base에서 벌어진 일들 그 무엇 하나 예상대로 흘러간 건 없었다. 그러면서 이어갔던 말은 우리가 그들과 같이 학교에 맞서싸우는 걸 바라는 것이 아닌, 그저 이 base에 앉아있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지 보여주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시위현장에서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몫을 일궈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축제인지 시위현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모르고 보는 그림이라면 오히려 축제에 더 가깝다. 하지만 축제와 시위의 공통점은 분명 존재한다. 개개인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는 것. 한 명 한 명 모일수록 세상은 더 주목한다는 것. 소수가 다수가 될 때, 목소리가 종처럼 저멀리 울려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 따사로운 햇살은 base를 늘 포근히 어루만졌고 그 속의 우리는 그 따스함에 힘입어 새로운 찬란함을 움틔우려 노래했다.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이게, 조용하면서도 활기차게 모두가 그 자리를 지켜나갔다. 내 인생 첫 시위는 참 예뻤다.


    2월 21일, Rally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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