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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Aug 28. 2024

내 어머니의 막걸리 한잔

그리운 내 어머니

 장독대 뚜껑에 빗물이 가득 고였다가 넘치기를 반복하는 사이,

빗방울은 더욱 거세지고 어머니는 장독대 한편에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부추를 한 움큼 쓱 잘라다 막내딸이 좋아하는 부추전을 부치신다.


비가 무엇이 그리 서러운 게 많은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부추전에 막걸리 한잔을 즐기는 나를 옆에서 연신 허벅지를

꼬집고 눈을 흘기시면서 "여자가 무슨 술을 마셔!"

어머니는 한소리 하신다.

"엄마! 조금이라도 마셔봐요 그래야 마을회관에서도 어울리지"

막내딸의 애교 섞인 제안에도 통하지 않고 연신 손사래를 하신다.

"내가 여자들 술 마시는 것 보기 싫어 마을회관 안 간다!"

너무도 단호하게 거부하시지만 쉽게 포기할 나도 아니기에

"혼자서 외로운 것보다는 막걸리 한잔 정도는 배워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은 거죠"

'외로움'이란 나의 표현에 마음이 조금 동하셨던지 "그럼 한 모금만 마셔 볼까?" 하시며

슬그머니 내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가오신다.


그렇게 시작한 지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막내야! 마을회관에서 막걸리 한잔 했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니 재미있다! 고맙다!"

너무도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의 내가 듣던 그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 내 어머니에게 막걸리 한잔은 단순히 술이 아닌 외로움과, 사람들하고 함께 하는

웃음을 마시는 거다!


그렇게 내 어머니는 비가 내리는 날엔 한잔을 넘기는 일은 결코 없으셨지만, 나와 막걸리 한잔

즐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물론 "여자가 무슨 술을 마신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막상 잔을 부딪힐 땐 연신 싱글벙글 즐거워하신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술을 과하게 마셔서 논일을 하고 오다 논두렁에 쓰러져 잠드신 분들도 간혹 계셨고,

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갔던 손자가 그 맛이 궁금해 한 모금 마셨다가

취해서 길섶에 잠들었는데, 기다리다 지친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작대기로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막걸리는 좋은 이미지로 다가설 수 없을 그 무엇이었을 게다.


예전에는 막걸리를 항아리에서 한 바가지 퍼올려 주전자에 담아서 팔았었다.

잘못해서 파리라도 빠져 있을 경우엔  휘휘 저어 파리만 건져 올린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그만큼 정감 있고 소박한 일상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막내딸과 막걸리 한잔을 즐기시던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고,

산소에 가는 날엔 어김없이 내 손엔 막걸리가 들여져 있다.

어머니 산소에 막걸리 한잔 부어 드리고 마을회관을 지나쳐 온다.

마침 말복날이라서인지 안에서는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 나온다.

그곳엔 막걸리 한잔에 웃으시던 내 어머니의 웃음소리만 없었다.



살아가면서 추억의 맛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은 더없이 즐겁고 빨리 지나간다.

소박하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게 참 소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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