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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Aug 24. 2024

숲 속의 난타

그들만의 난타 공연

 소나기가 한바탕 흩뿌리고 지나 간 후,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둘러 숲으로 향한다.

마치 시간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듯 긴 머리 돌돌 말아 올리고 나풀거리는 긴치마를 입은 체

슬리퍼를 신은 내 모습은 그들이 보면, 그들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참 우스꽝스러운 관객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그 공연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숲 속의 나무 계단에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흠칫 놀라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나뭇가지 뒤를 보니 역시나 설모형이다.

제법 덩치가 있고 내 기준에 좀 들어 보이는 청설모를 부를 때 정해 놓은 나만의 애칭이다.

"설모형!" 하고 부른다.

설모형은 마치 그 어떤 놀이라도 즐기듯 내가 움직이면 미동도 없이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내가 멈추면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설모형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 놀이를 아는 건가....


학교 운동장 한편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뒤를 빨리 돌아보고 움직임이 있는 아이를 재빠르게  찾아내야 술래를 면하게 되는 건데

왜 이리 나무 냄새가 좋은 건지 눈도 뜨기 싫고

뒤를 돌아볼 마음도 없는 순간이다.

그러니 그 시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래는 내가 거의 도맡아 시피 하게 되었다.

내가 술래인지 청설모가 술래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두고 서로를 보고 있다.


그렇게 몇 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다 보니 드디어 "숲 속의 난타"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관객은 나 하나뿐이고 모두들 풀숲에 자리를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디선가 새들만이 박자의 사이사이를 불안정한 음정으로 흥을 돋울 뿐이다.


"후드득! 후드득!" 제일 키가 큰 나무의 나뭇잎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먼저 연주를 시작하고

아래로 아래로 키가 내 무릎까지 닿는 막둥이 나무의 나뭇잎에 닿을 때까지

그들의 물방울 난타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물방울이 제일 키가 작은 막둥이 나무의 나뭇잎을 건드릴 즈음이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간지러움 정도일 게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관객은 먹구름이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창때의 태양이 숲 속을 금빛으로 물들일 즈음에

보이지 않는 설모형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며 숲 속을 빠져나온다.

그래도 혹시나 미련이 남아 나무 계단 옆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기대어 본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에 조심스레 뒤돌아 서서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항상 술래를 도맡아 하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재빨리 돌아다본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무심한 바람만이 스쳐 지나갈 뿐...


멀리서 바라다보면 그저 "산"일 뿐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이나

각자의 개성을 가진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아롱다롱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듯이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가끔씩 말 걸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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