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자매
"다른 길로 가지 말고 꼭 코스모스 길로 따라가야 된다"
연신 당부하는 할머니의 불안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 자매는 서로를 의지한 체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나선다.
제삿날 어른들은 다 이웃마을 친척집 장례식에 가셨다.
우리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할머니는 길모퉁이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드신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신작로를 따라 아이 걸음으로 한참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데 간혹 들리는 산짐승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우리가 집에 잘 도착하기를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밤하늘엔 무심한 반쪽 달이 몇 끼 굶었는지 힘없이 비추고
평소엔 반짝이던 별도 어찌 졸린 눈을 하고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신작로를 들어서면 칠흑같이 어두운데도 언니의 손전등을
무색하게 하는 그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코스모스!!
형형색색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한들한들 그 여린 몸을 흔들며
손전등의 불빛에 나 보란 듯이 그 자태를 더 뽐내고 있다.
마치 뒤에서 누가 금방이라도 어깨를 잡아당길 것만 같고
엊그제 본 "전설의 고향 " 생각이 왜 자꾸만 머릿속을 맴맴 도는 건지
무서움을 쫓기 위해 언니한테 한소리 건넨다.
"언니 우리 코스모스 꽃잎 튕기기 놀이 하면서 갈까?"
언니도 내심 무서웠던지 안 무서웠던 척을 하며 이내 "그래 손전등을 교대로 들고 한번 해보자"
그때부터 본격적인 게임을 한다.
꽃잎 튕기기 놀이는 뭔가 주제를 정해 놓고 꽃잎을 하나씩 튕기는 놀이다.
질투가 동했던지 평소에 막내를 챙기는 엄마의 마음이 궁금했는지
언니는 내가 생각해도 그냥 웃음이 나오는 제안을 한다.
"엄마가 너하고 나 중에 누굴 더 이뻐하는지 해보자"
안 그래도 자신이 있던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자신 있게 튕긴다.
"나!" 언니도 질세라 "나!" 그렇게 몇 번을 튕겼는데
이거 웬걸! 조막만 한 언니의 손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꽃잎이 한 장 더 남아 있었다.
언니는 손전등을 내게 건네며 큰소리로 손가락에 온 힘을 모아서 마지막 꽃잎을 휙! 날렸다.
순간, 튕겨 나가는 꽃잎과 언니의 "나!'라는 우렁찬 목소리만이 밤하늘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좀 전에 내 몸을 움츠려 들게 만들던 "전설의 고향"이고 뭐고 무서운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힘껏 달렸다.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도 다 보기 싫었다.
뒤에서 언니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손전등은 주고 가야지! 나는 어떻게 하라고!"
엄마가 더 이뻐한다는데 무서울게 뭐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코스모스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돌이켜 보면 참 웃음이 났다가도 눈물이 나는 추억인데 그 시절엔
왜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던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코스모스 꽃잎 튕기기 놀이는
코스모스 길을 정답게 걸어가며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어린 날의 우리 자매처럼 "엄마의 마음"을 놓고 하는 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