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과하셨던지 육남이 언니 부모님은
여섯 번째도 아들을 원하셔서 ,오남이 언니 다음으로
육남이 언니 이름을 또 그렇게 지으셨다 한다.
육남이 언니는 그렇게 우리 곁에 오게 되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언니...
기억이 있을 때부터 서울에 취직을 하게 되어,
홀연히 우리 자매의 곁을 떠날 때까지
그림자처럼 함께 하고 있었다.
나풀거리는 내 단발머리가 거슬렸던지 길가에 앉혀 놓고
야무진 손길로 예쁘게 땋아 주고,
여름날 개천에서 수영하다 거머리가 붙으면
할머니처럼 호박잎으로 깔끔하게 떼어주던 언니.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아무리 세게 쳐도
TV가 안 나올까 봐,
우리 집 지붕 위의 안테나까지 신경 써주러 오던 씩씩한 언니.
장대비가 내리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 집 안테나가 많이 흔들려서 TV가 안 나와 너희 집도 마찬가지지? 내가 돌려봐 줄게" 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이런 여름날엔 더더욱 그립다.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봉숭아 꽃잎을 손톱에 묶어 주며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하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설의 고향'을 함께 보는 날엔 언니집 안방에 있는 고구마 보관장 안에까지 동네 아이들이
들어가서 볼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었다.
작은 실개천을 건너야 집에 올 수 있는 우리 자매를 '전설의 고향'을 보고 무서워서
한 발자국도 못 갈 것 같은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실개천을 건널 때까지 손을 흔들며
어둠 속으로 씩씩하게 돌아서 가던 뒷모습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길 가던 사람이 무더위로 인해 갑자기 양산과 함께 나뒹그러져도 그냥 지나치고,
또한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
고마운 마음에 호의를 베풀어도 한 번쯤 의심받는 세상,
아닌지 뻔히 알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아니라고 말 못 하는, 오히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비난을 받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씩 마음에 큰 물결이 일 때마다
그 시절 "육남이 언니"가 생각이 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과, 말 한마디에 진심이 묻어나던 해맑은 미소를 보이던 언니..
가끔씩 그 시절 키가 컸던 언니와 비슷한 사람을 길가에서 마주하게 되면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된다.
육남이 언니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그저 막연한 그리움에 언니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수많은
'육남이 언니'를 일상 속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