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한창 쓰는 사람이었다. 글 세계에서는 마법이 일어나는 시간을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라고 말할 정도로 새벽의 초입문은 우리에겐 석유가 솟아오르는 유전, 황금이 쏟아져나오는 금광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써버릇 하던 글 가운데에 쓸만한 것들(인스타에 올릴 것들)이 많았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아마 새벽이 사람의 기억을 제일 아름답게 포장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사람들은 새벽에 뭔가를 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에 죄책감이 늘상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일할 수도 없고 재밌게 놀 수도 없는데 노트북을 켠다거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눈이 시시때때로 감기는데도) 평소에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둔 소설을 펼쳐든다. 그렇게라도 하면 뭔가 안심이 되는 것인지... 먼저 자리를 잡던 수면시간은 저 멀리 밀려버린다(얘는 순해서 새치기를 당해도 아무말 못하고 머뭇거린다).
불쌍한 우리의 수면시간...
내 경우엔 새벽은 기억의 무덤을 파헤치고 일어나는 좀비 떼들의 습격과도 같다. 우우-소리를 내면서 발을 질질 끌고 다니니까 애써 잔잔하게 묻어놓은 일화에 균열이 생긴다. 좀비들은 어디 하나 써먹을 곳이 없는데 자꾸만 귀찮게 무덤가를 배회하며 시끄러운 발자국들을 남겨둔다.
묘지에도 출입금지인 곳이 있듯 기억에도 출입금지인 것이 있지 않나. 그 구역에 발을 들여놓고 한바탕 발자국을 남겨두면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과거의 흑역사에 대해 이불킥을 하면서 한참을 잠 못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겨우 제 차례를 기다리던 수면시간이라는 녀석이 또 밀려나버린다(미안하네).
어찌 되었던 간에 그 시간에 글이 되어져 나오는(글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니) 이유는 그런 흑역사를 파헤치는 좀비들의 괴로운 무작위성의 발작이 이런저런 기억을 연결시키며 일련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글을 쓰는 시간은 오후 9시다. 옛날의 나였다면 이 시간에 노트북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바쁘게 현생을 살아가고 있었겠지만 나는 이제 새벽에 글을 쓰지 않는다. 좀비들이 더이상 기억의 무덤 언저리를 방황하지도 않는다. 새벽까지 버티기에는 너무 체력이 저질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새벽이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수면을 약속하는 꿀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나의 글을 위한 시간이 아닌 육체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녕, 나의 좀비들아. 그리고 미안했다 나의 수면시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