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어이없는 일들을 벌일 때에는 한결같이 ‘파이다~’(별로다, 싫다의 사투리) 하시면서 찡그리신 우리 할머니.
때때로 생전의 얼굴을 기억해보면 맑은 옥빛으로 빛나는 알배추같은 인상을 가지셨다. 머릿결이 하얗게, 그리고 푸근하게 곱슬이셨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로 기억하는 듯 하다.
할머니의 일과는 단순했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뒤 거의 20년 동안 살아오시면서 새벽 5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성경을 읽고 TV에서 방영해주는 예배를 보시고, 다시 기도하시며 성경으로 마무리하시는.
그게 뭐가 재밌나 싶어 할머니 방에 들어가도 일절 뭐라 안 하시던 그 기억이 난다. 정확히 할머니께서 떠나시기 전에, 시편을 읽어드린 적이 있었다. 시편23편이었는데 구절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내 아이가 꺽꺽 소리를 내면서 울음을 참고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담아 말하는 것을 우리 할머니는 다 아셨겠지.
죽음은 사람과 사람을 구분한다. 죽지 않은 쪽과 죽은 쪽은 아주 간단하게 구분된다. 신기하게도 생기가 사라지는 순간엔 아무리 외쳐보아도 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아무리 부여잡고 울어보아도 마찬가지다. 돌아오지 않는다.
바다의 썰물처럼 나가버린 당신. 기억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온다. 아주 조용한 숲에서 이름을 불러봅니다. 할머니
그런데 돌아오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죽은 뒤에야 밀물처럼 들어오는 기억에 관한 것.
그 사람의 생에 대한 기억들이 흐르는 바다와 같이 이쪽으로 이쪽으로 밀려 들어온다. 생전에 더 자주 방에 들어갈걸, 귀찮게라도 재롱이라도 피워볼걸 하는 마음이 썰물처럼 나가면 그 반동으로 재미있던 일화들이 하나씩 돌아온다. 그리움이 밀려올 때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