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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Oct 06. 2017

필름카메라, 당신을 담다.

아날로그로의 회귀

필름이라 사랑한다.

우리가 lo-fi 힙합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어느 순간 hi-fi의 삶은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시대가 최첨단으로 변할수록 기술력에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몸은 점점 무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천천히를 원하고 있습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카메라도 대표적인 예라 보시면 됩니다. 디지털 사진이 유행했던 이유는 사진의 결과물을 빨리 볼 수 있다는 편리함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끝에서 아이폰 6s로 찍다.

대부분 편리하게 필터를 이리저리 입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는 지난 20년간 주류로 군림했습니다.

2016년에 들어서, 그리고 현재 카메라를 찾는 청년들은 하나 같이 외칩니다.

필름카메라. 나도 가지고 싶어

필름 카메라를 찾는 대표적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지쳤기 때문입니다.

가장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이제 천천히- 결과물을 기다리고 난생처음 자발적으로 기다리는 이 과정, 현상-스캔-인화의 과정을 고통스럽지만 즐기고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는 이제 청년들의 삶을 조금씩 침식해나갑니다. 특유의 색감과 선예도, 감성과 분위기. 자기만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는 각자의 느림의 법칙이, 각자의 사진에 담긴 ‘자신’의 존재를 천천히 알아가기 때문이겠죠.

캐논 오토보이3 슈어샷, 코닥 200. “네. 지쳤습니다”


저는 비가 주륵주륵 내릴 때, 인이어 이어폰사이로 들려오는 로파이 힙합을 듣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필름 카메라를 들고 힘차게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은 당분간 비를 좀 더 맞아도 될 사람이거든요.

필름 카메라는 사진만 담는 구시대적인 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을 담습니다.
라이카 M4 코닥 200, 1/250s ‘커피 한 잔’

당신은 필름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 즐거움과 한 컷을 바라보는 애정이. 쉽사리 카메라 앨범에서 지워버리지 못하는 애인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같아요. 몇 천장이 있어도 다 내 것 같아요. 다 내 새끼들이 되는거지요.


필름 카메라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뽑으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 잘찍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삶을 풍요롭고 조금 더 재밌게 해줄 것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아저씨가 남긴 사진작품들이 아니라 당신이 현상소에 맡기고 있는 필름 두롤, 그거면 됩니다.

라이카M4, 코닥 200, 1/500.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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