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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의 진면목을 보다

[한일부부의 시장탐방]

아내와 내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죽어가는 골목을 살리고, 이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담는 '거리 심폐소생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의 소개처럼 우리 이웃들의 삶의 터전인 골목식당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즐겨 보고 있다. 특히, 사람 냄새가 나는 곳과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오래된 옛 골목 또는 재래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애쓰는 TV 속 그들의 모습을 몰입해서 보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우리 부부가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포방터시장"을 방영하고 있다. 백종원에게 대한민국 돈까스의 끝판왕이라는 칭찬을 받은 돈까스집이 포진하고 있고, 금슬 좋은 노부부의 곱창찌개가 유혹을 하며, 말썽꾸러기 홍탁집 아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그곳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한일부부의 시장탐방"의 일환으로 포방터시장을 전격 방문하기로 했다.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휴일의 오후, 우리는 부랴부랴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켜고, 포방터시장을 검색한 다음, 버스에 올랐다. 우리 집에서 포방터시장까지는 거리상으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버스를 환승해서 가야 할 정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가 불편했다. 그 이유는 포방터시장 자체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홍제역에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포방터시장을 향해 가면서 현재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방영되고 있는 집들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 한참 방송을 타고 있는 집들이었고, 시간도 늦은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렵다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혹시나 먹고자 했던 돈까스나 곱창찌개를 먹지 못하더라도 포방터시장의 방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잘 구경하고 오자고 둘이서 다짐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포방터시장을 방문하기 전부터 시장이 위치한 동네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 한일 부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집이 있었으니 그 집은 바로 "이상미 통밀빵"이었다.


포방터시장 "이상미 통밀빵"


'100% 우리밀 통밀로만 만든 빵'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 이 집은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많이 치장을 한 가게는 아니었지만 주인장 나름의 소신에 따라 차곡차곡 외관을 형성해온 것 같았다.


우리는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의 내부는 좁았다. 두 사람이 들어가니 움직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나 포근한 기운이 감도는 매장 내부에 우리는 금세 적응했고, 아기자기하게 포장된 통밀빵들을 차분하게 살펴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바구니에 무심한 듯 담겨 있었는데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상미빵과 린다치즈빵 그리고 까망빵을 각 한 개씩 구입해서 가방에 넣었다.


포방터시장 "수제어묵 핫바"


통밀빵집에서 나와 우리는 바로 앞의 수제어묵과 핫바를 파는 가게로 향했다. 구입한 통밀빵을 집에서 먹을 생각이었던 우리 부부는 그래도 포방터시장에 이르기 전에 배고픔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눈앞에 나타난 수제어묵과 핫바를 취급하는 가게는 딱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포방터시장 "수제어묵 핫바"


수제어묵을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었으나 포방터시장에서의 식사를 의식한 우리는 정말 먹고 싶은 메뉴였던 "떡말이 어묵"만 사 먹었다. 적당히 따뜻했던 어묵은 입안에서 쫀득한 떡과 어우러져서 기분 좋게 씹혔다. 포방터시장 식사의 애피타이저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포방터시장 "수제어묵 핫바" - 떡말이 어묵


어묵을 먹으며 걷다 보니 포방터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TV에서만 보던 포방터시장을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다. 오래된 집들과 잔잔히 흐르는 하천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의 일상이 숨 쉬는 마을이었다.


20181130 한일부부, 포방터시장에 방문하다


포방터시장의 남문에 다다르니 포방터시장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포방터시장이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고, 포방터시장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지도판을 두어서 가고자 하는 상점에 찾아가기 용이하도록 방문객을 배려하고 있었다.


20181130 한일부부, 포방터시장에 방문하다


포방터시장의 남문으로 들어가니 방송에 나왔던 가게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가게가 "돈카2014"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재료 소진으로 그곳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이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문 닫은 "돈카2014"를 살짝 살펴보고는 시장 구경에 집중했다.    


20181130 한일부부, 포방터시장에 방문하다


포방터시장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상점들의 간판까지도 오버스럽게 크지 않아 귀여웠다. 시장 자체도 작아서 시장 전체를 돌아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았다. 빠르게 TV에 나왔던 쭈꾸미집, 홍탁집, 막창집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곱창찌개는 팔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노부부의 막창집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곳도 대기손님이 다섯 팀이 넘게 있는 상태에서 곱창찌개는 다섯 그릇만 남아있다고 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곱창찌개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막창집의 문을 열었을 때,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 집을 방문하기 전에 많은 손님들과 전쟁을 치렀는지 그들은 지쳐 보였다. 인사는커녕, 말할 힘도 없었는지 내가 한 질문에 부랴부랴 아르바이트생이 나와 대답하는 상태였다.


20181130 한일부부, 포방터시장에 방문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방송과는 관계없이 우리가 식사하기에 적합한 음식점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한 집이 "민정이네 생선구이·생고기"집이다. 민정이네는 가정식 백반을 파는 집이었는데 우리가 포방터시장을 방문한 날에는 백반의 메인 음식이 가자미 구이였다. 식당 내부에서 고소하게 퍼지는 가자미 구운 냄새가 인상적이었다.


포방터시장 "민정이네 백반집"


반찬은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정갈하고 맛있었다. 양도 적당하게 담아내어 왔고, 구성도 괜찮았다. 아내와 식사를 하며 연신 “음~, 음~” 감탄을 자아낸 것을 보면 분명 이 집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 이런 음식들을 만들어내나 궁금해지려고 하는데 우리가 묻지 않아도 이 집의 사장님이 즐거운 어조로 말해주었다.


포방터시장 "민정이네 백반집"


그는 자신의 아내가 베트남 사람인데 백반집의 음식을 전부 만든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 14년 정도 되었는데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도 더 맛있게 음식을 한다며, 베트남 음식도 수준급으로 잘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보다 19살이나 어린 아내가 백반집을 도맡아서 운영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우리와 대화하는 와중에 자신이 베트남 여자와 한국 남자를 40쌍 이상 맺어주었다고 하며, 베트남 여자들이 착실하니 좋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포방터시장 "민정이네 백반집"


그의 말대로라면 그의 아내는 음식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도 남에게 팔기 위한 음식은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분명 그의 아내는 손맛이 있었다. 간도 적당했고, 음식을 맛깔나게 할 줄 알았다.

한편, 그는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관련된 포방터시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주었다. 방송에 나오는 가게들이 선정된 배경도 알 수 있었고, 방송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는 알 수 없는 실제 이웃 상인들이 생각하는 그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말을 이어갔는데 자신은 방송을 탄 포방터시장이 계속해서 잘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방송의 여파가 대단해서 지금은 외부 손님들이 엄청나게 유입되고 있지만 몇 달 못 가서 손님들은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유는 포방터시장이 교통이 불편해서 정말 확실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아이템이 형성되지 않는 한,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꾸준히 올 곳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0181130 한일부부, 포방터시장에 방문하다


나는 잠시 집에서부터 출발한 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포방터시장을 방문한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버스도 갈아타야 했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한참 동안 걸어야 했다. 시장을 방문하기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위치적으로 포방터시장은 외부 사람들이 어떤 목적에 의해 마음먹고 오지 않는 한은 방문하기가 꺼려지는 구조였다.

결국, 포방터시장은 동네의 주민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갈 구조였다. 유동인구가 한정적인 이 시장이 계속해서 존속하고, 더 나아가 발전해갈 길은 그들의 이웃들이었다. 짜여진 각본에 의한 모습으로 방송 출연의 날개를 달았다고 해서 그 가게가 계속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허상의 거품이 빠지면 남는 것은 절망뿐이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을 키우고 주변을 살피면 절망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뿐이다.


포방터시장 "꼰대찰꽈배기"


민정이네 백반집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꼰대찰꽈배기"의 도너츠들을 먹었다. 이 집에는 꽈배기와 같이 우리가 흔히 접하던 메뉴도 있었고, 독특한 메뉴도 있었는데 우리는 이 집에서 처음 보는 독특한 메뉴들을 주문해 보았다.    


포방터시장 "꼰대찰꽈배기" - 공룡알
포방터시장 "꼰대찰꽈배기" - 치즈도너츠


공룡알은 천 원에 2개를 먹을 수 있었는데 크기는 달걀보다 조금 큰 크기였고, 식감은 부드럽게 씹히다가 순식간에 입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천 원에 1개를 먹을 수 있는 치즈도너츠는 일반적인 팥도너츠의 빵 안에 치즈가 들어있었는데 치즈에서 느껴지는 짠맛과 빵에 살짝 묻어 있는 설탕의 단맛이 어우러져 단짠의 환상적인 맛을 선사했다.


포방터시장 "이상미 통밀빵"


포방터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상미 통밀빵"에서 구입했던 상미빵과 린다치즈빵 그리고 까망빵을 맛보았다. 설탕, 우유, 버터, 계란을 하나도 첨가하지 않은 빵이라서 그런지 맛은 없었다. 그러나 고소한 통밀의 향과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통밀빵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포방터시장에서는 아담한 점포를 기반으로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는 상인들이 있어서 시장이 밝아 보였다. "이상미 통밀빵", "민정이네 백반집", "꼰대 찰꽈배기" …, 이 가게들이 포방터시장에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한다면 포방터시장의 미래가 어둡지는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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