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간만에 소설책을 손에 들었다. 책장에 꽂혀있기는 했으나 읽지 않았던 한 권의 책, 그래서 늘 궁금했던 그 책, 나는 그것의 속살을 이번에는 기어코 보고 싶었다.
요즘 들어 나는 글을 읽으면서 부쩍 개별 작가들의 글 쓰는 스타일이나 분위기에 집중하고 있다. 내용을 이해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서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자신의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요즘의 나의 습관은 발동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을 때, 1인칭 시점으로 너무나도 실감 나게 표현된 살인자의 이야기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현미경으로 물체를 관찰하듯 악의 근원을 파고드는 작가의 집요한 열정은 문장마다에서 강렬한 체취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출처 : 「종의 기원」 작가의 말 中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도서정보 : 종의 기원(정유정 지음/은행나무/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