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없는 텅 빈 집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를 연다. 그리고 눈 앞에는 메추리알 조림, 고사리 볶음, 우거지 된장 무침 등이 담긴 용기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꺼내 밥상 위에 올리고, 재가열이 끝난 전기밥솥의 흰쌀밥을 한 주걱 퍼서 밥그릇에 담는다.
얼마간의 분주했던 수저의 움직임이 끝나고, 국도, 메인 요리도 없었던 나의 식사는 끝이 난다. 아내가 있었다면 생선 한 마리 또는 고기 한 토막과 함께, 밥과 같이 뜰 수 있는 간단한 된장국 한 사발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아내의 빈자리는 밥상까지 넘어와 그녀가 만들어 놓은 밑반찬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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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처럼 밑반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여러 종류의 반찬을 만들어 놓고, 번갈아 가며, 며칠에 걸쳐 먹는 한국의 밑반찬에 익숙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그날, 그 자리에서 소비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한 끼로 끝낼 수 있는 식사를 지향하는 것이 그녀였다. 그러나 아내는 퇴근 후, 조금만 게을러도 확 늦어지는 저녁식사를 막기 위해 늘 시간에 쫓기듯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혼 3년 차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내가 달라졌다. 이직과 함께 임신이라는 인생의 뿌듯한 과정을 겪고 있는 아내는 우리 부부가 즐겨하던 평소의 식문화를 변형하고, 냉장고에 밑반찬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가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하고서는 부부가 함께 장을 보고 집에 와도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미리 만들어둔 밑반찬의 위력은 어느 시점부터 우리 생활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임신을 한 아내의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변화를 알 수 없었던 아내의 배가 갑작스럽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뱃속 아이의 폭풍성장과 함께 아내의 배도 급격히 커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즈음부터 아내는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전 해본 적 없었던 한식 반찬들을 요리책을 참고하며 하나, 둘 만들고 있었다.
처음 아내의 밑반찬을 접했을 때는 할 수 있는 한식 요리의 범위를 늘리기 위함인 줄 알았다. 이전에 아내가 차린 밥상은 일식의 느낌이 강한 한식과 일식이 뒤섞인 밥상이었다. 아무래도 일본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상의 방향은 일식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아내는 나와 마주 본 밥상머리에서 한식 요리를 많이 못해주는 것을 미안해하곤 했다.
나는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음식의 종류는 상관없었지만 아내는 일식 위주의 식단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는 가사(家事)여서 보다 적극적으로 한식 요리 능력을 배양할 수는 없었다. 퇴근 후에 너무 늦지 않게 식사를 하려면 자신이 가진 기존의 능력 범위에서 신속하게 음식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오히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는 와중에 한식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의아하긴 했지만 평소에 아내가 한식 요리 능력을 키우고자 했기에 그러한 변화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한식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한 데는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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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병원에 입원을 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조산기가 있어서 관리 입원을 한 것이었다. 2주에 한번 또는 4주에 한번,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산부인과에 입원했다며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전혀 예상한 적 없었던 아내의 입원 소식이 황당하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아내가 필요하다는 물품을 가방에 챙기는 손길은 떨렸고, 그 가방을 가지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뜀걸음에 가까웠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하여 아내가 입실한 병실 앞에 섰을 때, 적막함 속에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움켜잡으며 아내를 마주했다.
다행히 아내는 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위험성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직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에는, 이른 시기에 보이는 몇 가지 조산 증후들을 완화시키고, 정산기(正産期)에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휴식과 돌봄이 아내에게는 필요했다.
아내를 통해 상황설명을 듣고, 입원한 아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아내가 만들어 놓은 밑반찬들을 꺼냈다.
밥 한 공기와 함께 순식간에 식사를 끝냈지만 아내의 밑반찬은 아직 남았다. 그 반찬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왜 아내가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는 단순하게 자신의 한식 요리 실력을 증진시키고자 밑반찬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직장일과 가사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고, 일을 한다는 핑계로 남편에게 소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루라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을 절약하고, 힘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중 하나가 쉬는 날 몇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두는 것이었다. 아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이기는 생활을 하기 위해 생전 해본 적 없었던 과감한 변화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었다.
너무나 미련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름대로는 아내와 힘을 합쳐 가사를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 하염없이 밀려왔다. 내가 조금 더 눈치 있게 행동하지 못했고, 더 많이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했다. 내가 전적으로 식사 준비까지도 담당했다면 아내가 막달에 가까워져 관리 입원을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밥상 위에 남은 밑반찬들을 다시 냉장고 속에 넣으며, 나는 입원한 아내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돌볼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입원 뒤 2주가 지난 지금, 며칠만 더 버티면 아내는 막달에 들어서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된다. 기특하게 버텨주고 있는 아내와 뱃속 아이를 위해 나는 생전 해본 적 없는 간호와 돌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본인인 아내가 우리 부부를 위해 생전 해본 적 없었던 한식 밑반찬을 만들었던 도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