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승진 누락을 경험한 지 1년이 넘었다. 한날한시에 입사한 같은 직종의 대부분의 동기들이 승진을 하던 그날, 나는 몇몇 동기들과 함께 승진 누락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맞이해야 했다. 회사에 연연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직업인을 추구하며, 회사에서의 출세에서 초월하고자 했던 나였지만 실질적으로 맞이했던 승진 누락이라는 사실은 당시의 나에게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낮에는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퇴근 후에는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지향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나였지만 승진 누락이라는 불편한 사실은 지난날의 내 삶에 대해 회의(懷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자의적이지 않은 회의는 반복되었고, 그 생각의 틈새로는 불안한 감정들이 하나, 둘 스며들었다.
회사 안에서는 같은 직종의 입사 동기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밀려왔고, 나의 승진은 1년 후, 2년 후... 언제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제법 차이가 나는 후배들보다도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승진하지 못했다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이 향하면 향할수록 멀리 떨쳐내고 싶은 괴로운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전혀 원하지 않았던 삶의 과정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고, 불편한 생각과 불안한 감정들이 회오리치는 괴로운 시간의 터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간절했고, 요동치는 내 마음을 다잡을 새로운 생각이 필요했다.
그때 아내와 많은 대화를 했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괴로울 때면 늘 내 옆을 지켜주던 아내와 대화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애초에 경쟁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한 순간부터 내가 가야 할 궁극의 길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을 뿐, 회사에서의 출세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아내의 말처럼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 변함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었고, 내 삶의 성과를 판단할 근거였다. 회사에서의 승진 여부는 내가 추구하는 삶에 조금의 영향도 미칠게 못 되는 삶의 조각일 뿐이었다. 나는 내 꿈과 나의 가족에 집중하고, 진짜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승진이라는 삶의 조각을 붙잡고, 지금껏 충실히 쌓아온 삶의 성벽을 긁으며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생각이 바뀌고 그것이 가슴에 스미니 거짓말처럼 나를 핍박하던 불편한 생각과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자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일상을 살게 되었다. 이후 아내 뱃속에서 자라던 딸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내 집 마련에도 성공했다. 내 꿈과 나의 가족에 집중하고 진짜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삶에 녹여내고 있었고, 충실한 일상을 지극하게 살았다.
그리고 1년 후, 2020년 정기 승진자 명단에서는 나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작년에 승진에서 누락되고 특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올해는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저 아내와 딸아이를 돌보며 지극한 일상을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고맙게도 회사는 나를 진급시켰다. 그런데 승진자 명단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덤덤했다. 작년의 요동치던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예사로운 마음만이 존재했다. 승진했음에 대한 희열로 환호성을 지를 만도 한데 내 마음은 무척이나 차분하고 평온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 승진을 했기에 회사에서의 직함이 달라지고, 급여가 올라가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꿈과 가족에 집중하고 진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단칸방을 벗어나 딸아이가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구매한 집은 내가 소유라는 관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했고, 지금껏 추구해온 마음의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삶에 더하여 딸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돈도 충만한 부자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내 가슴에 심어주었다.
그래서 올해의 승진은 한편으로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새로운 꿈을 실현할 발판이었고, 앞으로 펼쳐질 부자로의 여정을 지원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내가 승진자 명단을 보며 덤덤했던 것도 내 안에 자리 잡은 새로운 꿈을 내 몸과 마음이 충분히 이해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싸워본 적이 없는 상대와 겨루기 위해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의 첫걸음이 나에게는 올해의 승진이었던 것이다.
사실 경제와 금융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먼저 부를 이룬 수많은 부자들을 통해 돈을 배우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신 있게 나아갈 나만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서 돈을 추구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을 가고, 돈을 통해 누리는 자유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큰 의미를 가지도록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돈만을 쫒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가치를 담는 소신 있는 삶을 살고자 하기에 새로운 여정의 설렘 이면에는 두려움도 공존하고 있다. 내 삶의 결과를 돈이라는 물질의 양으로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여정이기에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내 마음속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달려보려 한다. 만족할 수 있는 진짜 부자가 정말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