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답답한 방...
달갑지 않은 공기 중의 먼지들...
답이 안 나오는 갑갑한 화장실...
모든 고민의 원인은 단칸방이라는 공간 때문이었다. 결국, 열악한 여건에서 육아를 시작할 수밖에 없으니깐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편함을 선택해서 지금이라도 충분한 공간이 있는 방 2개 이상의 집을 셋방으로 얻으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으로 장기 전세와 같은 공공임대주택 입주나 내 집 마련은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었다. 새로운 셋방에 묶이게 될 목돈과 계약사항이 언제든 나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단칸방에서 출산과 육아를 하기로 했다. 대신 현재의 단칸방 계약이 만료되기 전까지 주거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집을 잡기로 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아직 납입 횟수가 24회가 넘지 않은 청약통장이 1순위 자격이 되면 장기 전세와 공공 분양과 같은 것으로 서울의 공공 주택에 입주는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의 생활을 견디기로 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지만 단칸방에서의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가기로 결정하고 나니깐 단칸방이라는 공간은 일반적인 신혼집의 수준을 뛰어넘는 의미로 다가왔다. 비장함이라고 해야 하나...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가끔씩 알콩달콩한 신혼의 낭만에 젖어들 수 있었던 단칸방은 출산과 육아라는 예정된 상황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헝그리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
과거 우리의 부모 세대가 단칸방을 청춘의 보루로 두고, 세상과 맞서 싸우며 희망을 품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무일푼으로 시골에서 상경한 순진한 청년들이 빡빡한 서울살이에 지친 몸을 뉘었던 공간이자 자수성가한 아무개가 가난과 씨름하면서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며 잠들던 공간이 단칸방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단칸방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숙명처럼 맞이해야 할 인생의 과정을 위한 공간이었다. 다시는 겪어내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 뿐이니깐,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찐한 삶의 시간과 함께할 공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공간이 우리의 단칸방이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우리 가족의 역사였고, 추억이었다.
하지만 단칸방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도 인간이기에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불가피한 것 같았다. 아직 실질적인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피부로 확 와 닿지는 않지만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 끊어지지 않는 생각의 흐름은 한 번씩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깐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단칸방이라는 공간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거대한 삶의 과정을 살아낸 시간들이 분명 우리 가족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 줄 거니깐 지금 당장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도 살아내자고 마음먹었다.
그랬다. 단칸방이리는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숙명처럼 거쳐야 할 삶의 과정이었고, 20년 후 위대한 성공 신화의 밑바탕이 될 경험이었으며, 비참하다고 느낄 인생을 오히려 반전시키는 정신적 에너지원이었다. 가다가 힘없이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단칸방이라는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찐한 나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