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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에서 임신을 했다

방 한 편의 구석에 마련된 작은 붙박이장과 싱크대 그리고 보통 체형의 한 사람이 들어가도 세면대와 여러 번 몸을 부딪쳐야 겨우 씻고, 볼일을 볼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빼면 우리의 단칸방에는 성인 두 명이 이부자리를 펴고 꽉 차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가까운 역의 출구까지 걸어서 1 ~ 2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더블역세권의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의 단칸방, 건물 명칭에 오피스텔이 붙어서 세련된 인상을 풍기지만 실제는 20년을 바라보는 낡은 건물의 조그만 원룸이었다.

신혼의 낭만을 신혼집이라는 공간의 수준에서 찾지 않고, 신혼의 삶이라는 생활에서 얻고자 했기에 우리의 신혼집은 철저하게 기능적인 측면에 목적이 맞추어져 있었다. 아내와 내가 회사에 출퇴근하기에 편리하고, 가지고 있는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납공간만 있으면 되었으며, 퇴근해서는 성인 두 명이 피곤한 몸을 누이기에 부족하지 않을 잠자리 공간만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단칸방에서 1년 가까이 사는 동안은 그런대로 어른 두 명이 생활할 수 있었다. 옷이나 물건을 사는 것에 있어서 특별한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부부가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며,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더 나아가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에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 내가 사랑한 결실, 서로의 모습을 담고 있을 우리의 아이를 가지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와 닿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느껴졌던 그것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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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간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인 두 명이 몸을 누이면 꽉 차는 공간, 과연 이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으로 아이가 신체적 활동이 많아지기 전, 그러니깐 기어 다니기 전까지는 가능할 것 같았다. 최대한 공간을 마련하면 작은 아기침대 하나 정도는 들일 수 있는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힘들다면 부부의 사이에 아이를 누이고 세 식구가 한 이부자리에서 생활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공기질의 문제가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던 단칸방은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의 작은 원룸이었다. 생활하는 데에는 지장은 없었지만 방에 햇살이 비칠 때면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가 보였다. 아마도 붙박이 가구 깊숙한 어딘가의 그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자주 환기를 하고, 청소를 해도 늘 모습을 드러내는 달갑지 않은 먼지였다.      

마지막으로 욕실의 문제였다. 아기를 씻길 공간이 없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 씻기에도 빠듯한 공간, 아기욕조는 어디에 둘 것이며, 세면대나 변기에 부딪치지 않고 아기를 제대로 씻길 수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직접 부딪쳐보지 않은 이상 해봐야 할지 않을까... 막연했지만 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아내의 임신과 함께 찾아온 걱정들은 단칸방이라는 공간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이가 없는 신혼생활에서는 괜찮았던 것들이 아이가 있는 신혼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었다. 이쯤 되니 우리는 다시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의 끝에서 얻은 결론은 임신했으니깐 이사를 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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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고 있는 단칸방은 결혼 이후,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두 번째 신혼집이었다. 첫 번째 신혼집도 원룸이었는데 현재의 단칸방보다는 새로운 건물에 방 크기도 그럭저럭 괜찮은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다. 하지만 1년 계약 만료와 함께 돌려주어야 할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과 분쟁이 있었던 씁쓸한 기억이 신혼의 행복했던 기억과 공존하는 집이었다.

그리고 얻은 두 번째 신혼집이 현재의 단칸방이었다. 앞선 계약이 분쟁의 과정을 예고하고 있을 때 구한 집이었기에 집이 좋고, 괜찮다의 기준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집이 새것이고, 옵션이 얼마나 잘 되어있냐 보다는 집을 임대하는 사람들과 계약을 해도 괜찮겠는가가 좋은 집을 평가하는 기준의 우선순위에 들어갔고, 어차피 확실하게 자리 잡아 들어갈 우리 집이 아니라 임대로 살 집이었기에 많은 돈을 묶어 두지 않고,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집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다.

현재의 단칸방은 그런 측면에서 이전보다 더 낡은 건물에 좀 더 작아진 방이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한 집이었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부부가 각자의 직장으로 출퇴근하기에 편리하고, 풀옵션이었기에 특별하게 가구나 가전을 살 필요도 없었으며, 임대인 가족이 같은 건물의 꼭대기 층에 살면서 건물관리를 직접 했기에 관리비가 따로 들지도 않았다. 추가 비용 없이 보증금과 월세만 지불하면 되었고, 월세 또한 이전의 집보다 10만 원이나 쌌다.

2년을 계약했고, 우리는 현재의 단칸방의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는 웬만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은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계약한 2년 안에 우리가 앞으로 쭉 살아갈 확실한 우리 집을 잡겠다고 다짐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내의 임신은 웬만하지 않은 변수가 아니기에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고, 임신의 여부 때문에 기회를 놓쳐 서울에서 셋방살이만 전전하는 인생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의 이유에서 단칸방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진짜 우리 집에서 살겠다는 궁극의 목적을 위해 신혼의 낭만을 더욱 북돋아 줄 더 넓고, 새로운 집은 포기했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하거나 큰돈이 묶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신혼이지만 가구나 가전도 하나 없이 단칸방에서 살더라도 궁극에는 진짜 우리 집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확실한 힘을 키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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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아내가 임신을 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공간의 부족 때문에 벌어질 상황은 다분히 예상이 되었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견디기로 했다. 지금 이사라는 선택을 해버리면 결혼 이후 지금껏 추구해온 삶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셋방을 살면서 몇 개의 넓은 방과 공간을 채워줄 새로운 가구와 가전을 추구했다면 우리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할 이유가 없었고, 신혼집을 옮기며 보다 더 미니멀한 삶을 살 이유도 없었다.

어려움은 예상되었지만 우선은 부딪쳐 보자고 했다. 그리고 바로 집 근처의 전자제품 판매 매장을 찾아 단칸방 전체를 커버해 줄 공기청정기를 구매했다. 단칸방 생활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우리의 첫 행동이었다.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를 구매했는지 집의 공기질은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단칸방의 공간에 공기청정기가 들어와 버리니 아기 침대를 놓을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의 사이에 아기를 눕히고 함께 생활하면 되었다. 부부의 공간이 아기의 공간이었고, 아기의 공간이 부부의 공간이 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출산 예정일에 아기가 태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출산 이후 단칸방의 계약 만료까지 6개월만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기를 씻기는 문제는 경험도 없거니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레짐작으로 여기서 주저 않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깐 그때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니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한동안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청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지...', '쓸만한 전셋집 하나 정도는 충분히 구해서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 건지...'와 같은 생각들로 속이 한 번씩 뒤틀리기는 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깐 우리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 책임은 앞으로 펼쳐질 단칸방에서의 출산과 육아 그리고 내 집 마련이라는 큰일들을 담대하게 겪어내는 것이었고, 그와 관련해서 느끼게 될 모든 감정들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행복한 감정이 아니라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다부지게 이겨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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