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좀 응원해주면 안돼?

by 썬파워


학교 입학을 앞둔 중3의 어느날

아빠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았다.


언니들은 모두 군말없이

당연하게 입학했던

상업고등학교를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을때

무척 화를 내셨더랬다.


그리고 결국

내가 다른 도시의 입문 고등학교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을때

결국 아빠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날, 아빠도 엄마도 나도

다 같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주 나중에서야

아빠가 그렇게

화를 냈던 이유를 알았다.


우리집은

그만큼이나

힘들었던것이다.


5남매중 막내였던 나는

그런건 전혀 모를때였으니까.

언니들은 자기가 다 좋아서

상업고등학교 가고

바로 취직해서

돈벌러 다니는줄 알았지.


머리가 좋았던 큰언니도

그림을 하고 싶었던 둘째언니도

각자 하고 싶었던게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는걸

나는 그때 전혀 몰랐다.


하지만 나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고


집안 사정에도 맞지 않는

다른 도시 입문고로 입학했고

힘든 통근생활을 하다가

고3때는 비싼 하숙생활까지 했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는걸

그때 경험으로 배웠더랬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제는 내심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교로

입학하시길 원하셨지만

나의 성격을 이미 경험하신탓인지

나의 반발에 큰 반대는 없으셨다.


대학을 졸업하면 고향으로 올까 싶으셨지만

굳이 서울로 가겠다며

대학교 자취방 정리하자마자

집에 인사도 없이

서울로 냉큼 올라가버린

막내딸에게 더이상 반대 의견도

잘하라는 응원도 하지 않으셨지.


그리고 최고의 하이라트였던

결혼식!


남편은 아직도 이때의 일로

우리 아빠에게 섭섭함이 남아있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고향집에 함께 내려갔을때

아빠는 정말 크게 반대하셨다.


나도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크게 반대하셨는데

이때 남편은 진지하게

나와 헤어질 고민까지 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더랬다.


이렇게 보면 아빠는 늘 반대파였네.

어릴때는 그게 참 속상하고 서운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만큼 많이 아끼고 사랑하셨던거겠지.


하지만 어린 마음에

늘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지지나

응원이 참 필요했다.


빈말이라도

나의 선택에 무한 긍정의

말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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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과 함께

나의 반대파는 없어진줄 알았더니

이제는 남편이라는 새로운 반대파가 생겼다.


남편은 성향 자체가

나와 완전 반대지점에 있다.


그래서 일까.

내가 어떤 터닝포인트를 맞아야할때

늘 반대파의 역할을 한다.


미라클모닝을 할때도

부동산 임장을 다닐때도

이제 무인카페 창업을 준비할때도


남편은 응원보다는 걱정

혹은 무관심

혹은 반대로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덕분에 속도조절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무한 응원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너무 긍정주의적이라

그런 브레이크가 필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긍정에너지가

더많이 필요할때도 있잖아.


새로운 도전이란

10%의 용기

90%의 긍정마인드로

시작되는거니까.


지금은 90%의 긍정마인드가

더 필요할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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