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시간 보내기
독박 간병을 하게 된 지도 5개월이 넘었다. 간병 중인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면
1. 매일 일찍 일어나서 동생 아침과 점심 챙긴 후 출근하기.
(잘 씹지 못하기 때문에 믹서기에 갈아서 줘야 한다. 과일도 갈아서 매일 준다. 이 모든 걸 준비하고
나면 출근하기 전에 진이 다 빠진 상태가 된다.)
2. 퇴근하고 집에 오면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고 동생 저녁 챙기고 약 먹이고 다시 설거지하기.
3. 주말에는 동생 목욕시키고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 세탁기에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해서 버리기.
4. 한 달에 한 번 요양 병원에 계신 엄마 외래 진료 모시고 가고(엄마는 몇 달 전 넘어지셔서 걷지 못하시기 때문에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엄청난 체력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가끔 필요한 물품 챙겨다 드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기. 평일에는 출근해야 해서 병원 예약은 토요일로 잡는다.
5. 세 달에 한 번 동생 대리 처방하러 병원 가기(이것도 역시 토요일에 간다.)
적어 보니 진짜 내가 하는 일이 엄청 많구나.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일이고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는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솔직히 너무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디 아프냐는 말이다. 갱년기에 접어든 데다가 기초 체력도 약한 상태에서 피로가 쌓이다 보니 어떤 날은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기도 하고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도 구입해서 먹고 매일 영양제도 챙겨 먹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그래도 내가 쓰러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고 집에서 스트레칭도 한다.
요즘 들어 퇴근하고 집에 오거나 주말에 자꾸 눕고만 싶고 졸리고 힘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때가 많아졌다. 우울증 초기 증상일지도 모른다.
센스 없는 남편은 위로랍시고 나처럼 사는 사람들 많다는데 그런다고 내가 겪는 어려움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리고 처음보다는 힘듦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힘든 건 힘든 거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혹시 오해하실까 봐 밝히는데 남편도 일이 바쁘지만 엄마 병원 갈 때 같이 가주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다.
동생 대리처방을 다녀온 토요일 밤에 예능 프로인 <온 앤 오프> 엄정화 편을 보다 보니 현재의 내 상황과 비교되면서 그녀의 여유로운 일상과 싱글 라이프가 부러워졌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노트북과 책을 들고 집 근처 카페에 갔었는데 이제는 그럴 에너지도 없고 집 밖을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내일 아침에는 오래간만에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일찍 일어나서 동생 아침과 점심 준비하고 약도 먹여야 하는데 그러고 나면 아마도 지쳐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거다.
일주일만이라도 독박 간병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겠지. 꿈을 꾸다 보면 이루어진다는데 정말 그럴까.
날마다 몇 줄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자꾸 다음날로 미루게 된다. 오늘도 노트북을 켜놓고 앉았는데 피곤이 몰려오면서 눈꺼풀이 자꾸 감기려고 한다. 순간 그냥 잘까 하다가 이러면 정말 글쓰기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것 같아서 졸린 걸 참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 건 글을 쓰다 보니 힘이 나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뭔가 성취감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글쓰기에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