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생각

by Reㅡ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할머니도 나를 사랑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내가 어릴 적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릴 적,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사촌 언니와 남동생과 나는 늘 할머니 댁에서 방학을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유독 아들을 좋아했고, 그래서인지 특별히 내 남동생을 예뻐하셨다. 사촌 언니와 나는 그런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나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작 며칠만 지내면 되니까.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할머니와 살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잘 웃지도 않았고, 늘 쌀쌀맞았고, 같이 사는 나 보다는 가끔 집에 방문하는 다른 사촌들을 더 예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대학을 갈 때, 할머니는 나에게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업을 할 것을 권유하셨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크게 실감이 났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늘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하셨고 원하는 직업을 갖기를 응원해 주셨었는데, 그저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할머니를 조르고 떼를 써서 겨우 2년제 시립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었을 때, 할머니는 나를 비난했다. 말로, 눈초리로 때로는 한숨으로… 나는 내 비전을 찾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할머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백수로 보내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많이 싸웠다. 왜 할머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따지기도 했고, 할머니는 나보다 할머니의 아들 딸들, 나에게는 삼촌과 고모들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20대 후반기를 그럭저럭 보내고, 서른 살이 되었다. 당시 나는 이미 목회자가 되기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였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을 입학하기 전 방글라데시로 1여 년간 자원봉사를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그 사실을 할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는 며칠 동안 나와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혼자 그 결정을 내리고 할머니께 말씀드린 것이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할머니도 나의 뜻을 이해하셨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셨다.


방글라데시로 출발하는 날, 친구들이 나를 공항으로 데려다주었고, 나는 집에서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할머니의 작은 어깨가 더 작아 보였고, 할머니의 굽은 등이 더 굽어 보였고, 할머니의 눈가의 주름이 더 짙어 보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할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화재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두 달간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할머니는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큰 빚을 지게 되셨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경제적 어려움은 할머니에게서 웃음을 앗아갔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를 볼 때마다 잃은 아들이 생각나 웃으실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를 대학에 보내줄 형편이 정말 되지 않았던 것이고, 혼자 남은 내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아갈 것이 걱정이 되셔서 나는 채찍질하신 것뿐이셨다는 사실을 철이란 게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2년 전, 할머니께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할머니는 나를 잘 알아보지도 못했다. 할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그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할머니가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할머니는 내게 울타리였고, 버팀목이었고, 부모였고, 유일한 가족이었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다. 아주 가끔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할머니는 나에게 꿈에 대해 말한 적도, 인생에 대해 말한 적도, 도전과 열정에 대하여 조언해준 적도 없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꿈을 꿀 때,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 매 번 도전할 때, 열정이 식을 때나 불타오를 때, 내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정말 자랑스럽다. 내 인생 가운데 할머니를 만난 것은 정말 큰 축복이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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