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많이 한 그와 이별을 많이 한 나

무엇이 긴 연애를 만드는가

by 해센스

그는 연애를 많이 했다. 엄밀히 말하면 연애를 오래 했다. 성인기의 거의 대부분을 연애를 하며 보낸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면 대체로 길게 오래 만나왔다. 나도 연애를 적지 않게 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연애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이별을 많이 해봤다. 성인기의 충분히 긴 시간을 혼자 보냈고, 연인과의 추억 못지않게 나 자신과의 추억이 엄청나게 많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일단 연인으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알 수 없는 것엔 호기심이 너무 강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불안했다. 썸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파고드는 것은 제일 재미있었다. 누군가를 연인으로 만들어 그 사람의 말투, 습관, 취미와 취향을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성격과 성향이 꽤 빠르게 유추가 되고 나와 잘 맞지 않는 특성이 발견되면 이 연애를 지속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에도 역시 빠르게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잘 못 헤어졌다. 그런 내가 싫었다. 지나고 보니 후회만 남았다. 인생의 가장 큰 두려움은 단호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단호한 것에는 맞지 않는 관계를 빠르게 떠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연애를 하면 처음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썸”이라는 불안정한 상태를 넘어서서 연애”라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에 들어갔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취해 며칠을 보낸다.


그러다가 곧이어 어떤 사람의 실제 모습이 조금씩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평생 연인의 어떤 특성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내 인생과 연애사에 대해 반추한다. 음… 그때 그 사람을 조금 더 견디어 볼걸, 그 사람은 이런 장점이 있었지, 아. 그때 나름대로 행복했는데 왜 그랬을까, 이상형과 싱크로율 90%인 귀요미를 만나기 위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외모에 눈이 멀어서 바보 같은 선택을 했구나, 왜 세상 섬세하고 다정한 천사 같던 연인을 더 이해하지 못했을까, 왜 마지막엔 그렇게 막대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간다.


그와 만났을 때 여느 새로운 커플이 그렇게 생각하듯 우리는 다 잘 맞을 것 같았다.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싸울 일 없지 않을까, 크게 안 맞는 것 없지 않을까?”란 말에 그도 "없을 것 같은데. "라고 했다. 가치관, 경제관념, 생활 습관, 연애 스타일 모든 면에서 안 맞는 점이 딱히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만나다가 결혼하면 되겠지 싶었다.


뭐, 앞으로도 크게 안 맞거나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여느 연애처럼 엄청 크게 싸우고 서로 상처 주고 밑바닥까지 보여줄지도 모른다. 웬만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없으면 좋겠다. 그래도 조금은 분위기가 안 좋고, 안 좋은 감정이 오가기도 했다. 다 나의 불만족과 불만 때문이다. 책으로 배운 연애, 직접 책 쓰며 얻은 깨달음으로 연인의 모습을 바꾸려 하면 안 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줘야 된다는 생각을 입력시켰다. 그런데, 여전히 이고가 너무 강한지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그래, 가장 최근에 읽은 알랭 드 보통 책에서는 연인에게 요구해도 된다고도 나온다.


요구를 하는데, 시간과 방법과 텀이 잘못됐다. 그래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새로운 연인에게는 어디까지 나를 이해하고 참아줄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무의식적인 본능 같은 것이 발동한다. 나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 내가 아직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과 연애를 할 땐 어떤 일이 있으면 이 관계가 끝이 날까, 혹은 내 마음의 100% 확신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 불안감을 잠재우는 빠른 방법은 파멸적인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썸이라는 것을 탈 때, 연애가 막 시작됐을 때는 하지 않을 무례한 행동을 해보는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이 멋지다고 하는 내 모습, 그가 나를 처음 좋게 보게 했던 내 모습 말고, 연인에게만 이해받고 싶은 모습, 응석받이 아이 같은 모습을 슬쩍 끼워서 패키지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ADHD 만렙, 예술가의 다른 미친 면, 항상 행복하고 긍정적이지 않고 우울하고 짜증 내는 모습까지 세트로 구성해 그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것이다.


불안하고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인간관계가 주는 불안감에 캡사이신을 뿌려서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야겠다는 파충류 뇌의 지시에 따른다. 나한테 화를 낼까, 참을까, 내가 조금 틱틱거리면 기분을 풀어줄까, 내가 무례하게 하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안정감을 쥐고 뒤흔들려하면 그는 나를 붙잡으려 할까, 더 큰 안정감으로 나를 감싸 안아줄까, 아니면 먼저 우리 관계를 자르고 떠나버릴까 이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무리수를 던져보는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일부러 하는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확실히 있다.


파멸 혹은 안정. 이번에는 나름의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캐릭터에 대해 조금 더 심도 깊게 알게 되었다. 그는 맞춰주려고 하지 않는다. 화는 내지 않지만 나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지적해서 내가 잘못한 점을 느끼게 만든다. 무례하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과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기분을 맞춰주지는 않겠지만, 아이에게는 꽤 좋은 아빠가 되겠구나 싶었다.


연애를 오~래, 거의 쉬지 않고 한 그는 사람은 원래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전부터 그 얘기를 했다. 나는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아마도 그것이 긴 연애와 짧은 연애를 가르는 제1 차이점이다. 원래 안 맞다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는 마인드와 안 맞는 점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끝없이 고통받는 차이점.


나는 불만충이 되기 전까지는 꽤 편안하고 괜찮은 연인이다. 연락, 표현, 만남, 생활 습관, 자기 통제 등에서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관계에서 욕구불만 상태에 이르면 파멸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파멸적인 행동은 세 가지다. 힘들다고 말하기, 마음을 회수해 다정하고 친절한 모습은 거둬드리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무조건 주는 모드는 끄고, 애정을 아예 안 줄 수는 없으니 부정적인 것을 추가로 주기 시작한다. 네가 날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마냥 널 행복하게 할 순 없지라는 무의식적인 마인드를 반영한 행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연애가 아닌 다른 것들에 관심을 돌리려고 한다. 다른 일에 몰두하고 과거의 연인이나 다른 이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늘린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자기 파멸적인 행동의 일종이다.


그는 원래 다 이면이 있는 거라며 귀여운데 섹시한 여자는 없다고 한다. 나는 수긍이 안된다. 귀여움과 섹시함은 공존할 수 있다. 드립도 잘 치고 애정표현도 많이 하는 사람 있었다. 만나봐서 안다. 그는 드립형 인간이라 감정 표현은 잘 못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합리화부터가 싫다. 그래도 아무 설명이 없는 것보다는 좋다. 허술한 논리라도 논리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어쨌든 재미있고 유쾌한데 표현도 엄청나게 많이 했던 사람과도 얼마못가 헤어졌다. 화술이 좋은 사람들은 그 유려한 언어로 나에게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치려 했거나, 번지르르한 말을 행동이 따라가지 못해 결국 용납이 안 돼서 쉽게 끝냈다. 과거에 수많은 장점이 있던 연인들도 어떤 치명적인 단점으로 다 헤어지고 그를 만났다.


새로운 연인을 만날 때 우리는 전 연인이 가졌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없는 연인을 만나려 한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는 당연하고 본능적인 선택이다. 최근에 어떤 이유 때문에 헤어졌는데, 똑같이 그 이유를 가진 사람을 선택할 만큼 인간이 바보 같진 않을 것이다.


나의 전연인이 숨기는 게 많아서 헤어졌다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이별 사유를 뒤집으면 그게 바로 다음 연인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에는 필터가 없는 것과 포장이 없는 것도 구성품으로 따라온다. 그에게는 애초에 예쁘게 포장해서 말하는 특성이 없었고, 이미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화법이 싫어졌다고 하면 자기모순적이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그는 알고 나는 잘 몰랐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원리지만 깊게 생각하고 체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줄곧 현재 연인의 단점과 과거 연인의 장점을 비교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장점만을 가진 유니콘을 찾아 헤맸다. 아니, 막상 만나는 것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했다. 그래서 금방 헤어졌다.


그 역시 전 연인들에게 있었던 단점이 없는 나를 골랐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가진 장점도 나에겐 없다. 그런 것들을 나에게 바라지 않는다. 그가 인생의 이 시점에서 찾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 내게 있고 그래서 그는 나를 믿고 좋아한다. 과거 연인의 장점을 내게 찾는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그게 없어서 지금의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이니까.


내가 선택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 한 개에 집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그 지점을 계속해서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오래 연애할 사람은 어쩌면 이상형의 조건들을 고루 갖춘 사람이 아니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단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절대 용납이 안 되는 단점이 없는 사람의 이면, 그 단점을 포용할 수 있느냐가 연애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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