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면서 성당에서 결혼할 수는 없을까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딱히 없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특히 밝은 조명 밑에 서있으면 피로도가 극심할 것 같아서 굳이 결혼식을 한다면 작고 조용하게 조명이 과하지 않은 곳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성스러움까지 가미된다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모태신앙도 없고, 비종교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대학생 때부터 조금 더 고차원적인 삶을 살기 위해 좀 더 나이가 들면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성당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차 굳어졌다. 교회는 갈 생각이 전혀 없고, 성당 정도는 조용히 다녀보기 괜찮을 것 같았다. 오래 살던 집 바로 근처에 성당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자주 지나다니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나와 성향이 비슷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게 생각했던 선배님들이 성당을 다녀서 나도 성당을 다니면 딱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사진 찍고 구경하러 예쁜 성당을 몇 번 가봤고, 해외에서도 교환학생을 했을 때나 여행 가서 성당을 가면 느낌이 좋았다. 층고 높은 건물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을 받으며 딱딱한 성당의자에 고요하게 앉아있으면 느낌이 좋았다.
내가 얼마나 믿음이 신실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일주일 중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고요하고 성스러운 시간을 갖고 싶은 것, 그게 다이다. 인생을 사는데 믿음이라는 것은 매우 귀중한 가치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의 섭리라든지,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대한 믿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성당을 가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원래 있던 주말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 연애를 하게 돼서 남자친구한테 넌지시 물었다. 성당을 다니면 결혼할 때 배우자도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고 들었다. 이야기해 보니 유일신 안 믿는다고 해서 성당을 다니기는커녕 관면혼배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영세입교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나는 사실 미리 알아보지 않았고 잘 몰라서 관면혼배에 그런 조건이 있는지 몰랐는데, 내가 말하기 전에도 이미 모태신앙에 반대한다고 했다.
나도 내 자녀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하기로 했으면, 그 종교에서 규정하는 것도 어느 정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 생각이 있으면 유아세례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종교생활을 하기로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도, 내가 갑자기 어떤 종교를 선택하고 싶다면 이끌림일 수도 있고 그럴만한 심리적인 이유가 있을 터이다. 성당을 다녀야지 생각한 것이 사실 6년 정도 돼서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생각은 아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형태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이왕 한다면 역사와 전통이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끌림이 있는 종교를 택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신이 있다고는 생각하는 것에선 남자친구와 가치관이 맞았다. 나는 신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에너지, 다른 말로 신이 있다고 믿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경건하고 수용적이며 긍정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삶의 태도이며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생각을 많이 하고 성숙해지면서 주어진 것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 태도, 운명과 소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것 등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그는 유일신은 믿을 생각이 없지만 사주는 믿는 것 같다. 언젠가 슬쩍 혼자 내 사주를 물어봤다고 알려줬다. 사주를 보고 나서 내가 하는 것은 아무 말 안 하고 다 그저 믿고 지지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남자친구도 돈이 모이는 사주지만 본인보다 돈 훨씬 많이 벌고 잘 될 거니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내 사주와 성향을 알아서 하는 일에 간섭하면 절대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가 내 사주에 대해 들은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그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은 그게 무엇이든, 사주라는 이름의 외부의 메시지든 어떤 믿음의 끈을 잡아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 존재기는 한가 보다.
연애가 안정감을 주고, 행복해지는데 도움을 준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내가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 대한 열쇠를 온전히 쥐고 타인의 간섭에 영향받지 않는 것, 그래서 내게 그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혼을 하고 싶다,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그와 함께하고 있으니 그의 생각을 고려해 종교 생활을 미뤄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진짜로 자존감 있는 연애인가, 내 오랜 생각과 선택, 이끌림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