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서 변해가 본 적 없는데…

차분히 알려주면 하나씩 배울 수 있어

by 해센스

몇 번 연애했으면, 조금 긴 연애도 했으면 어떤 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 것 같지만 잘 모른다. 만났던 사람이 이런 것은 하지 말고 이런 것은 더 하고 나한테 바라고 요구했던 적이 잘 없었다.


진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몇 가지 들어서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깨달아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적어놨는데 세부적인 것까진 하나하나 들었던 적이 없다. 나이 먹을 만큼 먹고 연애할 만큼 했는데도 상대방이 웬만큼 다 맞춰주는 연애했거나, 금방 차였거나, 안 맞는 점 발견하고 금방 떠나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연애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상대방에게 주로 바랐던 것들, 연락과 표현은 정말 바뀌기 어려웠던 것들이라 헤어질 때까지도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변한 적은 없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바랐던 것은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상식적인 것 외에는 없었어서 '아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 깨닫고 바뀌었던 적은 많이 없다. 사소한 행동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관성처럼 그냥 하던 대로 했다.


어차피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않았던 연애, 그런데 헤어지지는 못하는 관계,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 계속하면서 수동공격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상대방이 못 참아서 헤어지자고 하면 붙잡아도 봤다가, 먼저 사소한 것으로 트집 잡아 이별 통보도 했다가 그가 붙잡으면 안심하고 다음부턴 더 마음 놓고 기분대로 행동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관계를 망치는 행동과 회복 과정이 나에게 마음의 이상한 평안을 줬다. 난 이제 대디 이슈를 완전히 인정하고 그냥 드러내놓고 연애에 임하기로 했다. 애정결핍 때문에 아직도 연인의 관심을 엄청 원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 같거나 내가 준 애정을 돌려받지 못하면 스스로 관계를 망치는 행동을 한다.


내가 몇 번이나 불안해하고 밀어내도 내 옆에 있겠다는 확신을 얻어야 그제야 조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있다. 물론 그와 함께한 시간도 내가 연애의 영속성을 쥐고 흔드는 횟수만큼이나 중요하다. 알고 지낸 지 일 년은 넘어야 내 사람으로 느끼고 조금 더 마음을 위탁할 수 있다.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만난 모임에서 공개 연애하면 안 되냐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말했는데 아주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졌다. 난 거절 잘 못 받아들이는데, 거절하고 싶어도 앞에서 일단 "그래. "라고 하고 좀 더 이성적으로 다시 설명해 주면 나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냥 가볍게 말한 것에 왜 이렇게 이성, 논리, 단호, 칼, 조선의 선비처럼 반응하는지 기분이 안 좋았다.


내가 말한 것에 단호박처럼 안된다고 하길래 기분 나빠서 다른 오빠랑 밥 먹는다고 했다. 그냥 솔직하고 싶고,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것 나는 상관없는데(어쩌면 아주 간절히 바라는데), 내가 원하는 것보다 타인의 눈치를 봐서 행동을 조심한다고 말하는 게 기분이 안 좋았다. 물론 나도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은 싫어한다. 그런데, 진실하지 못한 것은 더 싫다.


다음에 말하자고 대화를 회피하길래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점심시간에 전화하라고 해서 통화하는데 잘못했다면서 웃기면서 무마하려고 하길래 '그래, 그런가 보다. '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근데 5분도 안 돼서 뭐..?? 직장동료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우선순위에서 또 밀리는 거야 나???????? 나 관심 뺏기는 것 싫어한다고! 아침부터 "힘내 내 사랑 <3 " 이라고 보냈는데, 답장이 "고마워ㅠ"라고 왔는데 넘어갔다고! 지금 3 콤보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인내심 바닥났고, 나의 사랑꾼 모드는 일시 종료되었고, 결핍과 불만장이 열렸다. 내리막길을 오빠가 스스로 연거야. 내 애정표현에 하트로 보답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별 것 아닌 것도 거절한 데다가 먼저 전화하라고 하더니 직장동료 때문에 5분도 안 돼서 가봐야 한다고? 난 우리 연애 아니고서도 주식도 하락장이라서 심기 불편하다고!! 그리고 여성의 호르몬 사이클 상 기분이 다운된다고. 근데 왜 이래 나한테..??


저녁때 만나서 내 얘기를 쭉 하니까 차분히 들어주더니, 나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가만히 앉아서 말 끊지 않고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듣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꾹 참고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일타강사처럼 설명을 너무너무 잘하기에 듣다 보면 그의 상황과 의견, 그리고 나의 상태에 대한 객관적 진단에 수긍할 수밖에 없어진다. 나는 한 달에 책을 최소 5권씩 읽는 문해력 왕이라 설명을 들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그의 진단을 듣기가 싫다. “당신은 감정기복이 평균 범주를 넘어섭니다. 어느 날은 사랑.. 결혼.. 얘기했다가 어느 날은 ….. ” 이런 뻔한 진단과 차라리 표현도 안 하고 바라는 것도 없으면 좋겠다는 이미 수십 번은 들어왔던 말…..


일단 이해가 됐으니,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스스로에 대한 진단에 수긍했으니 칼로 물 베기인 것처럼 싸움이 일시 종료되었다. 그리고 피자를 먹는다. 피자를 먹으며 "우리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인 것 같아. "라며 피자에 취해 진실되지 못한 말을 한다. 감정은 안 풀린 게 틀림없다. 그의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거슬린다. 평소에 1만큼 싫었는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했다면 그날은 10만큼, 맨 처음 그의 말투를 듣던 날만큼 싫게 느껴진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며 낯선 사람에 대한 아주 아주 높은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꼈던 그를 마주한 첫날처럼 그의 말투가 싫다. 참지 못하고 말로 뱉어버린다. "오빠 말투 짜증 나. "하고. 하루 종일 나름의 인내심을 발휘해 꾹꾹 누르던 그는 "이제 나도 짜증 나. 너 나 시험하니?"라고 대꾸한다. 뭐 시험????? 이런 협박조 말투 기분 나쁜데, 그런데 이 사람 화난 것 같은데 어쩌지? 일단 화장실로 대피한다. '음… 배 아프다고 할까?, 저번처럼 먼저 풀어주긴 싫은데, 오늘은 나 그렇게 많이 잘못한 것 없는 것 같은데…' 일단, 최악의 상황이면 아프다고 하자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그를 마주한다.


일단 몸을 밀착하고, 아이컨택도 해보고 친한 척하며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해 본다. 그런데, 자존심 내려놓기는 싫고 할 말은 해야지. 그런 말투 기분 나쁘다고 말한다. "기분 안 좋으면, 네가 그렇게 말해서 기분 안 좋다고 하면 되지, 너 나 시험하니"가 뭐냐고 한다. 난 한 달 전의 우리의 싸움에서 배를 보였다고, 그때는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마무리 짓지 않았냐고, 이번엔 크게 잘못한 것 없는 것 같은데 난 그냥 이렇게 사소하게 기분 나쁜 일 있으면 기분 나쁘다고 말하고 토닥토닥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도 내가 짜증 난다고 한 것 기분 나쁘다길래 미안하다, 선 넘었다고 빠른 사과를 한다.


감정 상한 상태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서로 진짜 감정이 튀어나온다. 그는 평소에 말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냐, 문제가 없는데 말을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 수긍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차분하게 서술형 문장으로 잘 설명해 주고 대화가 되어야 서로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고, 사소한 서운한 감정도 해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분 안 좋은데, 다른 방식으로 수동공격적으로 표출하거나, 혼자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아버리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도 마침내 내 행동을 지적한다. "넌 똑똑한 애가 왜 그러냐, 기분 나쁘다고 다른 오빠랑 밥 먹는다고 하는 것은 연애할 때 최악의 수다"라고 한다. 연애에 대한 글도 쓰고, 책도 그렇게 많이 읽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말한다. 음… 그래, 속 마음 얘기하는 건 좋은데 나 이 화법 용납 못하는데? 똑똑한 애가…. 최악…. 그런 것도 모르냐…. 많이 들어봤던 말인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화법인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우리 아빠 말투인데?


나는 눈물을 보인다.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사람을 죽이는 화법, 상처 주는 말투,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아서 최근에 말하기와 감정에 대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상처받는 것도 무섭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이 100배는 더 무섭고, 화법 때문에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달라지려고 굳게 마음먹고 노력하고 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화법인데 이 화법이 싫다, 오빠가 내가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방면에서 똑똑한 것이랑 연애를 잘하는 것이랑은 다르지 않냐, 내가 연애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고, 잘 못하니까 계속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연애를 몇 번 해보긴 했는데, 상대방이 나한테 많이 맞춰주는 연애 했거나, 짧은 연애 밖에 안 해서 서로 조율하면서 맞춰가 본 적이 제대로 없다고 말한다. 오빠한테는 이런저런 장점이 있고, 우리가 진지하게 만나고 있으니, 하나하나 알려주면 수용력과 학습 능력은 좋으니까 오빠가 원하는 방향대로 맞춰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넌 통제감이 중요한 사람 아니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나는 한 발짝 더 솔직해진다. 어제 로버트 그린의 <<인간관계의 법칙(유혹의 기술 축약본)>>이라는 책을 읽고 새롭게 느낀 것이 있다, 나는 연인관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통제에 반항하는 것)까지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성의 부모에게서 느낀 애정결핍(오이디푸스 콤플렉스)때문에 연인관계에서 아이처럼 사랑받고 싶은 것 같다, 오빠가 나한테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원래는 통제하려고 하는 편 아니냐, 내가 통제받는 게 진짜로 싫었으면 왜 오빠를 만나겠냐, 어느 정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옆에 있는 인간의 복잡성에 대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게 침범당하지 않아야 할 통제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내가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내 돈을 어떻게 쓰는지 등이다. 남자친구는 전화하면 첫마디로 어디냐고 묻는다. 그리고,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집에 늦게 들어가면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데서 숨 막힘을 느끼지는 않는다. 원래도 바른생활을 하려고 하고, 적당히 자제하며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귀 기울이려고 하고, 내 감정을 존중받기 원하는 만큼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배려하려고 한다. 남자친구에게 예민한 부분, 기분 나쁜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듣고 고칠 의향이 있다.


대디 이슈든, 조금은 제멋대로고 충동적인 ADHD 성향이 원인이든, 나에게 부족한 부분, 그래서 연인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보완하려고 한다. 그가 내 감정기복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분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는 잘 보완이 되고 있고 그래서 희망적이다. 나는 감정을 솔직하지만 상처 주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역시 나와 함께 하며 감정을 속으로 쌓아두는 것이 답이 아님을 깨닫고, 비난하는 말투 대신, ’내가 이럴 때 기분이 안 좋으니, 네가 이렇게 행동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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