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없는 연애의 결말
올해 연애를 6번 했다. 모두 끝이 났다. 아웃라이어 1번을 제외하고는 사귀자부터 그만하자까지의 기간은 모두 2주 안에 들어왔다. 그게 연애냐고? 연애 맞다. 각각의 기승전결이 있었다. 내가 그를 짝사랑했거나, 그가 나를 짝사랑했던 기간(기), 짧은 썸과 고백(승), 인생의 어떤 것보다 진짜처럼 느껴졌던 연애(전), 그리고 이별이라는 (결)말까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생생한 스토리가 있었으니 짧은 연애라도 연애였다.
느닷없이 연애 횟수 얘기를 꺼낸 이유는 설렘, 찌릿찌릿한 느낌, 전문 용어로 케미스트리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 6번의 연애를 하면서 6명의 각기 다른 남자와 손을 잡아봤는데 처음 손을 잡던 때 딱 한 명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찌릿한 피카츄 전기자극이 없었다. 영원히 글의 소재가 되어 주는 여름에 만났던 고기 대충 굽던 남자의 작은 손을 잡았을 때는 ‘아. 이거구나. ’ 싶은 설렘이 화학적 자극으로 느껴졌는데 다른 남자들과는 손과 손이 맞닿았을 때 전혀 케미스트리를 느끼지 못했다.
선연애 후스킨십이라는 유교적 연애관을 지향해 왔다. 손이라도 잡아봐야 케미스트리가 느껴질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으니, 일단 호감이 가거나 좋은 남자라고 느껴지거나 내게 진심을 보여주는 남자들과는 연애라는 다음 단계로 진행을 시켜 봤다.
올해 만났던 남자 중 평소 내 스타일이던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짝사랑을 꽤 진하게 오래 했는데도 막상 손을 잡으니 그다지 느낌이 없었다. 내가 차이는 형국으로 연애가 금방 끝났지만, 좀 더 만났더라도 케미는 크지 않았을 것 같다. 호감이 가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던 그와 스파크가 튈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그리고 조금 더 좋아했던 또 한 명의 남자 역시 케미스트리는 부족했다. 성적인 매력보다는 그의 다른 모습이 좋아서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손을 잡으니 놓고 싶을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남자로 안 느껴져도 조금 참았는데, 그에게 약간의 불만이라도 생기고나니 진짜로 손을 놓고 싶어서 잡고 가던 중간에 놓았다. 손가락이 가늘고 마디도 얇은 섬섬옥수라서 남자 손을 잡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뼈가 두껍고 골격이 큰 편이다 보니까 나보다 손의 뼈마디가 얇으면 남자로 안 느껴진다.
나머지 세 명은 내게 진심인 것 같아서 만났다. 거기서부터 잘못 됐다. 만약 그들을 소개팅을 통해 만났다고 한다면, 내 입장에서는 한 번 만나고 애프터가 없다고 해도 딱히 아쉽거나 생각나지 않았을 것 같은 정도의 케미였다. 만나서 대화하는 동안에는 가치관이 비슷한 점도 있고 대화도 잘 통하니까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잠시 가지게 될지라도, 막상 그가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연락을 결코 먼저 하지는 않을, 그리고 2~3일 후에는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질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반했다면 이미 순수하게 친구는 될 수 없는 것이니까, 내가 느끼는 설렘이 부족했다면 이미 거기서 결론이 난 관계였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고마움이나, 상대방의 진심, 나를 향해 쏟아내는 관심과 칭찬, 머릿속에서 짜 맞춰낸 러브스토리와 같은 것들로 이윽고 연애까지 끌고 갔다.
나는 설레지 않는데, 그들만 설레는 관계 속에서 한여름의 강렬한 햇볕 같은 그들의 사랑과 표현을 받으며 열흘 정도 따뜻했고 뜨거웠다. 하지만 결코 오래갈 수 없다. 나는 누군가가 사랑한다고 하면 며칠 내 사랑한다는 말을 돌려주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똑같이 돌려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분명 고양이인데 강아지를 만나면 강아지 흉내를 내는 이상한 고양이이다.
그래서 지쳐버렸다. 내가 결코 반하지 않은 남자들에게 강아지 흉내를 내는 본성을 거스르는 노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별에도 빌드업이 필요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작은 것이라도 일단 트집을 잡아서 갈등으로 키워낸다. 연인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그들은 내가 가진 불만이 크나큰 내 사랑의 뒷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절대 아니다.
반하지 않은 당신과 나누는 “사랑“이 너무 부담스러워져 탈출하고 싶은 내 마음이 일단 어떤 문제라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사이의 진짜 문제는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이다. 얼굴을 보고 있는데 설레지 않고, 당신의 행동에 감동하지 않고, 스킨십을 하고 있는데 케미스트리가 터지지 않는 것이다.
이별을 말하며 꽤나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내 스타일이 딱 있고 외모가 중요한 것 같다라거나 케미스트리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 친구 같은 느낌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딱 내 스타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건 끌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끌리고, 생각이 나고, 쌍방의 감정으로 사귀게 되었는데, 처음 손을 잡으니 심장이 빨리 뛰면서 찌릿찌릿해야 한다. 그것이 케미스트리다.
이별로 향하게 된 작은 갈등들이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빌드업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나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심장이 당신에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