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도 되고 희미해져도 된다는 마음을 향하여
독서모임에서 스틱(Made to stick!)이라는 책을 같이 읽고 있다. 스스로를 달라붙게(기억에 남게) 소개해보라고 해서 짧은 시간이 나를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했다.
예민과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마음에 대한 글을 쓰는데 주로 쓰는 주제가 예민함과 불안함이라고 했다.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앞에 서있는 누군가의 치맛자락이 다리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불쾌할 정도로 예민하고, 남자친구가 거의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메시지를 보내놓는데 자기이이잉(이 최소 2개 이상)이나 Baaaabe(a최소 3개 이상)가 와있으면 안심하고 다른 말이 와있으면 오전 내내 긴장되고 뭔가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로 불안하다고 했다. 예민함은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특성이고, 불안함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한 바로 다음 날 남자친구에게서 자기이이잉이나 Baaaabe가 와있지 않고 첫 메시지로 “헤이이”가 와있었다. 이것은 뭔가가 괜찮지 않은 것이다. 전날 싸운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불안했다.
그래서 출근 준비를 시작할 시간까지 10분 정도가 남았길래 전화를 걸어봤다. 아침부터 미국인 친구한테 화냈다고 했다. 같이 게임하는 친구들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가 삐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가서 전화해서 얘기하다가 친구한테 소리 질렀다고 했다.
친구랑 싸워서 평소보다 다운됐구나 싶었다. 어찌 됐든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잘 자라는 카톡을 받고 평소와는 다르게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아침 일정을 물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친구와 다툰 시간과 나에게 “헤이이”를 한 시간이 궁금했다.
친구랑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얘기하다가 친구한테 몇 시에 소리 질렀냐고 물어봤다. 눈뜨자마자 친구가 단톡방 나간 것을 보고 바로 전화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끊고 나한테 카톡 했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회사일을 하고 운동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그와도 틈틈이 카톡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밤이 돼서야 나는 안심했다.
‘아. 내가 원인이 확실히 아니구나. 나한테 마음이 변한 게 아니구나. ’ 싶었다.
나도 모르게, 어쩔 땐 의식적으로, 불안할 때는 필사적으로 그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를 체크하고 통계 냈다. ‘사랑해를 보통 하루에 4번 했는데, 엊그제는 저녁에 한 번만 했네. ’, ‘부를 때 자기라고 부르다가 오늘은 헤이라고 불렀네. ’
눈에 딱 크기로 보이지 않는 애정의 크기를 그의 단어 선택과 나에게 관심 가지고 집중하는 시간으로 수치화해보려 하고 며칠 전의 데이터, 한 달 전의 데이터와 비교했다. 불안한 마음이 그냥 내 느낌뿐인지, 실체가 있는 불안함인지 가늠해 보려고 했다.
이 관계에서 유기불안이 시작된 날부터, 그리고 매주 보다가 처음에 약속했던 대로 2주에 한 번씩 보기로 만나는 텀을 늘고 나서부터 감당해야 하는 불안의 시간과 크기가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5일을 혼자 보내면 이틀을 꼬박 붙어있다가 12일을 연속으로 떨어져 있어야 하니, 내 마음과 그의 마음을 가늠할 필요 없이 생생하게 온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는 텀이 2배가 넘게 늘어났고 그 한고비를 지나는 금요일이면 더 불안해지고 애정이 간절했다.
술자리도 없고, 친구도 안 만나고, 일, 운동, 공부, 식사준비와 식사, 가끔 게임만 하는 완전히 예측가능한 생활 패턴에 연락 패턴도 예측가능한 데도 불안했다.
시간이 부쩍 많아진 혼자 보내는 주말 동안 음악 들으며 심리와 명상에 대한 책 읽고, 심리 관련 유튜브를 듣고, 산책하며 명상하고, 글을 썼다. 쌓이면 마음의 짐이 되어 평소에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빨랫감도 모조리 처리했다.
압박감에 짓눌렸던 어깨에서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으니 지쳤다는 마음에서는 조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의 그 누구도 내 예민함을 건드리지 않는 온전한 하루가 주어지니 뾰족뾰족 날 섰던 가시는 조금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여전히 삶의 의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힘겨웠던 주말이 지났다. 아침에 요가를 해야겠다 싶어 오늘은 다시 오랜만에 아침 요가를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명상 영상을 틀고 닥치는 대로 일단 들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좋은 말과 생각으로 덮어씌우려고 했다.
너무 많이 지쳤을 때는 지침을 우울함으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한다. 휴식을 해보니 알았다. 나는 여전히 우울한 것이 맞았다. 그리고 그 우울감을 완벽하다고 믿고 싶은 연애로 덮으려고 했다. 오랫동안, 아주 간절히.
나의 우울감은 혼자 있어서 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왔거나 쉽게 이용하려고 한다는 데서 오는 압박감과 억울함이었다. 외로움은 자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고, 나로 인해 조금 더 자신은 편해지려 하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법 같은 사랑을 통해 이 짐을 좀 나눠지고 싶었다. 나도 힘들 때 마음으로라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그래서 연애와 사랑에 집착했다. 집착하니까 잃을 까봐, 내가 집착하는 대상의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 희미해질까 봐 불안했다.
“너를 걱정해, 신경 써, 무슨 일이든 도와줄게”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도 좋고 안심되고 든든했고, 그런 말을 해주는 그가 너무, 미친 듯이 좋았다.
직장 동료들이나 나에게 먼저 다가오려는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마저도, 나는 이미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걷고 있는데 자신의 짐을 덜어 내 등에 올려주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홀로 걷는 것을 택하는 것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연인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힘들었지만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다.
회사도, 가족도, 친구도 힘들면 너무 버거우면 내려놓을 수 있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만 어떤 것이든 유지할 수 있다.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나는 관계에서 불안의 노예가 되었던 것 같다. 그가 싫어하는 내 모습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참아야 하고, 더 관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말 내내 책 읽고, 산책하고, 명상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했는데 일요일 밤에는 역시나 서운함을 못 이기고 속마음을 얘기했다. 공부하다가, 저녁에는 게임하다가 전화 한 통화도 없이 게임 다했으니 잔다고 하니까 결국 속상해서 전화를 걸었다. 나한테 온전히 집중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뭐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전화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끊었다.
짧았지만 어쨌든 마음을 얘기했으니 불안했다. 서운함과 애정결핍에 밤에는 우울했고 아침에는 불안했다. 사랑은 행동이라더니 사랑한다는 말을 도대체 어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을 보내며 생각했다.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고.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단련하기 위해 명상하자고.
나에게 집중하니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 관계는 오히려 안정적이게 느껴졌다. 얘는 원래 처음부터 밤에는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고 일찍 자고, 5시 반부터 baaaabe를 하는 애였는데, 부쩍 서운해진 건 주말을 우리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건 내가 연애에서 가졌던 기대 그뿐이었다.
애정표현이 줄수도, 때로는 사랑이 희미하게 느껴질 수도, 여느 관계처럼 끊어질 수도, 그리고 인연이라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마음에서 조금 힘을 빼자. 끝없이 새로운 사람이나 다음 기대고 싶은 사람을 찾아 헤매고, 연애만 하면 불안하고 불행해지는데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홀로 씩씩하게 걷는 수 밖에는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