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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l 12. 2024

남자친구를 모임 뒤풀이에 데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할 때

남자친구가 독서모임에 두 번째로 참석했다. 이 책의 메시지가 정말 좋아서 남자친구도 읽게 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나와 둘이 대화 나눌 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솔직하게 나를 제외하고 현재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답을 얻었다. 그 답을 얻고 나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 동기부여해 주고 도와줘야 할지 명확해졌다. 최근에 그에게 건강 관리가 우선순위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임이 끝나고 남자친구에게 뒤풀이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너한테 제일 중요한 일정 아니었냐면서 같이 간다고 했다. 그날 아침에 그에게 공유해 준 별 다섯 개 쳐놓은 나의 일정에는 밤에 술 한 잔 하고 놀면서 스트레스 푸는 것이 있었다.


독서모임에서는 비밀스럽게 이야기에 집중했는데, 뒤풀이 가면서 슬쩍 손잡고 같이 갔다. 이 모임에서 꽤 오래 본 친한 언니와 오빠에게 내 남자친구라고 소개했다. 깜짝 놀라 했다. 전혀 몰랐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남자친구 이렇게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그 속에서 많이 웃고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까 행복하고 마음이 놓였다.


모임에서 1월부터 쭉 같이 책 읽고 토론하고 뒤풀이에서 놀고 연애얘기도 심심찮게 했던 오빠가 남자친구한테 술은 좀 하냐고 물었다. 남자친구가 술 거의 안 마신다고 하니까 바로 “해일리 이상형이네. ” 라고 했다. 지난 독서모임 때 남자친구가 계절마다 보는 영화가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 감성적인 면도 있고 나와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전에 남자친구 잘생겼다고 해서 설마 했었는데, 진짜 잘생겼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그분에게 손석구 닮았다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드라마에서 손석구 나오는 장면을 내게 보여준 적도 있고 손석구 대사를 따라 했던 적도 있어 “오빠 손석구 좋아하지 않아? ”라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좋아한다면서 독서모임 손석구 오빠와 손석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작년부터 모임에서 봤던 언니는 내게 대견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렇게 연애도 하고 남자친구도 데려오는 것을 보니 대견해 보인다며 엄마 마음 같다고 했다. 평소엔 언니지만 귀엽고 순수하고 아이처럼 느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뒤풀이 장소에 가는 길에는 내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니까 “너 진짜 내 말 안 듣는다. ”라더니 남자친구와 마주 앉아 웃고 떠드는 그 새, 믿음이 생긴 건가 하며 흐뭇했다. 이 언니와 회사 근처에서 따로 만났을 때,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독서모임 데리고 오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언니는 데려오지 말라면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아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괜히 다른 여자들도 있는데, 굳이 남자친구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를 완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서는, 그냥 데리고 와서 동기부여도 시켜주고, 내가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다 같이 두루두루 친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언니도 오빠도,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모임원도 다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했을 때부터 여자친구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가식이나 체면치레하는 것 없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모임 자칭타칭 손석구오빠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도 똑같아서 둘이 잘 맞겠다 싶었다. 이 분이 자기 집에서 나는 솔로 같이 보자며 나와 몇몇 사람들을 초대했었는데, 이제는 둘이서 같이 오라고 했다.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남자친구가 독서모임 때 미쳐 못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자란 이야기를 했는데, 언니가 그래서 한국말이 그렇게 느리냐고 했다.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었는데 거기는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느긋하고 말이 느리다고 했다.


손석구오빠가 미국 충청도에서 온거구나라며 치~얼~스~여~~ 하는데 웃겨서 자지러졌다. 나도 처음에 말이 느려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못느끼고 있었는데, 아 그랬지 싶었다.


그 순간 이렇게 내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연인들을 한 번 이 자리에 대입해 봤다. 그 누구도 이렇게 제대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솔직하고 느긋하고 내향적이지만 적당히 센스 있고 위트 있고 자기 얘기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사람, 너무 미래의 걱정까지 끌어다 하느라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을 믿고 스스로를 믿고 용기 있게 일단 부딪쳐 보는 사람.


나와 닮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같이 해주는 사람이라 이렇게 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게 내가 처음이라는데 나도 처음이다. 이런 남자친구, 그리고 이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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