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름이 예쁘다고 했다. 무인빨래방에서 건조기에 이불과 베개커버들을 넣어놓고 다시 긴 테이블에 같이 앉아 읽던 책을 계속 읽으려던 참이었다.
남자친구가 문득 한숨을 쉬었다. 왜냐고 물었다.
그는 ”행복해서“ 라고 했다. 그냥 이러고 있는 게 행복해서라고 했다.
“나도” 라고 했다.
IC칩이 고장 난 카드를 계속 들고 다닌다. 빨래방에서 전용카드를 충전하려는데 IC칩으로만 결제가 가능하길래, 그에게 충전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만원을 충전해 줬다.
빨랫감을 넣고 코스를 선택한 후 충전된 빨래방 전용카드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카드 인식이 안 됐다. 다른 기계로 옮겨서 해보려고 하는데도 안 됐다.
그래서 세탁기 위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받길래 일단 신용카드로도 결제가 되는 세탁기로 세탁물을 옮기고 그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카드에 충전한 금액을 환불해 줄 테니 문자메시지로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의 계좌번호를 달라고 해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불이 들어왔다.
그는 빨래가 다 된 시간에 맞춰 건조기에 빨랫감을 옮기러 갔다. 빨래방 전용 카드가 건조기에서는 잘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돌아온 그에게 “우리 만 원 번걸까?”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며 빨래방만 돌아다니며 이걸로 재테크해도 되겠다고 했다.
행복하다며 한숨을 쉬던 그는 화장실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우리 집 화장실에 가라고 했다. 그는 좀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변기에 화장실에 있는 방향제 뿌리면 냄새 하나도 안 난다면서 갔다 오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산 미니 오렌지향 탈취제가 있는데, 효과가 정말 놀랄 정도로 강력하다.
책을 읽다가 하늘을 봤다가 하고 있는데, 살구빛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그가 투명 통창 사이로 내가 너무 예쁠 때 짓는 미간에 살짝 힘을 준 표정에 오후의 햇살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왔다.
소라색빛 나는 하늘에 하얗게 그려진 뭉게구름, 그리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연한 오렌지색 옷을 입은 그의 하얀 미소를 보니 더없이 평온했던 풍경에 나른함과 따뜻함이 한 스푼씩 더해졌다.
그는 또다시 행복하다고 했다.
혹시 아까 화장실 가고 싶어서 한숨 쉰 거냐고 물었다. ㅋㅋ 그는 장이 편안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행복하다고 했다. ㅎㅎ
역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완전한 행복과 평온에 이르려면 장도 편안해야 한다.
며칠 전 아침 그와 함께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타이밍에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들렸다. 같이 타고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다.
남자친구는 역까지 걸어가며, 혹시 아는 여자냐며 그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킥킥 웃었다고 했다. “아니, 모르는 분인데 우리 대화가 웃기긴 했잖아. ”라고 했다.
전날 독서모임 뒤풀이에서 기름지고 자극적인 인스턴트류의 음식을 잔뜩 먹고 나서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배가 아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회사로 가고 그는 그의 집으로 가려던 참이라 급하면 다시 집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장이 예민해서 배 아프면 바로 화장실 달려가야 한다며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그는 정 급해지면 지하철에서 간다고 했다.
아침부터 엘리베이터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그 여자분이 웃은 게 아닐까 했다. 남자친구는 똥얘기하면 똥마려우니까 똥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똥얘기 할 만큼 친해지고 편해졌구나 싶었다.
그다음 날에도 나는 멕시칸 음식점에서 파히타를 같이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남자친구가 또띠야쌈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 있는데, 고기반 양념반으로 만들어줘서 먹고 나면 장이 불타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장에 좋아 보이는 음료를 우선 한 개 마시고 나서 괜찮은 듯했으나, 우리의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마자마자 안 되겠다며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완벽한 시간에 건물에 도착했다. 그는 자기는 다음 날쯤 반응이 올 것 같다고 했다.
그 역시 빨래방에서 건조기를 돌려놓고 기다리던 와중에 완벽한 타이밍에 더 행복해지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