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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책방 Apr 10. 2024

투명인간Ⅱ

공직생활

그간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사실은 같은 지역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직원이 알고 있었고 그들 또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는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항암제 투약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한 시간에도 여러 번씩 선풍기를 틀었다 껐다 하기도 하고 수시로 열이 올라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마다 내가 힘겨워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전에 있던 근무지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량의 물품상자가 층층이 쌓인 채로 나한테 배송이 되어왔고 나는 그 박스 안에 있는 물품들을 꺼내서 해당 직원들한테 배포를 해야 했는데 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지 않은 건강한 여자라고 해도 여자 혼자서는 들기 어려운 무게의 상자들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사무실의 그 누구 하나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꽤 큰 부피의 상자 몇 개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역시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기로 그 상자들을 들었다가 심각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수도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남자팀장님께 상자를 옮기는 것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끌채로 옮기면 되지 않냐면서 거절에 가까운 대답을 했고(끌채를 이용하더라도 상자를 들어서 끌채에 올려놔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 대답을 거절의 의사로 판단했다) 나는 그 이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남자팀장은 보통 사람들과는 약간 결이 다른,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기에 나쁜 의도로 거절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니 더 이상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층층이 쌓여있는 그 큰 상자에 있는 물품을 꺼내기 위해 나는 상자를 내리는 과정에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면 팔에 힘이 들어갈까 봐 상자의 테이프를 벗기고 상자 모서리를 잡아끌었는데 그러다 보니 상자가 엎어지고 안에 있는 물품이 다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도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부서의 남자 직원이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나를 도와주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물론, 병력이 있는 것이 벼슬도 아니고 나를 동정해 달라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기업에 다니면서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며 동료들과 전우애로 똘똘 뭉쳐 지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부서의 직원이 어마어마한 부피의 상자를 혼자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는 이유로 이 부서로 지원을 한 것이었는데 괜한 부서이동으로 마음에 상처만 남기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의 그 사건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그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부서의 관리자인 여자 과장님께서 직렬도 다르고 병력도 있는 내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힘들지 않게 나를 정서적으로 많이 보듬어주셨고 내가 여직원들 사이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상황을 금세 인지하고 나를 위한 격려와 공감의 표현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 과장님께서는 워낙 다른 직원들의 뒷담화나 개인사에 관심이 많고 수다스러웠는데 어느 날은 나에게 직전 근무지의 여직원들이랑 아직도 소통을 하고 지내는지,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가끔 한 번씩 만나기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단체 채팅방을 통해 꾸준히 소통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 한 번 만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과장님께서는 그 여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면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가끔씩 이야기를 하기도 하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장님께서는 “그래... 그렇게라도 풀어야지. 나도 뭐 친한 사람들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들 하니까.”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과장님과 그런 대화를 짧게 나눈 이후 갑자기 텃세를 부리던 그 여직원의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어떤 서류를 코팅하기 위해 코팅기를 작동시키고 있었는데 작동이 잘 되지 않자 작은 혼잣말로 “어? 왜 안되지?”라는 말을 했는데 갑자기 그 여직원이 벌떡 일어나서 “주무관님! 뭐가 잘 안 되시나요?” 하고 친절한 얼굴로 묻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갑자기 왜...?’라는 생각을 했고 마침 코팅기가 작동이 되어서 “아...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재빨리 코팅을 하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날 퇴근 후에 집에서 생각을 해보고 나서야 갑작스럽게 돌변한 그 여직원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임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직전 부서에서의 근무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내가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고 그것이 나를 밟아도 될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장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내가 여러 명의 여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자신도 언젠가 부서이동을 하게 되면 만날 수 있는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나를 통해 자신의 평판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했던 모양이었다.

그 여직원은 내가 친하게 지내던 직원 중 한 명이 결혼을 하자 축의금을 입금했는데, 전혀 친분이 없던 그녀의 축의금에 결혼을 한 직원도 의아해했고 평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기부 동참 여부를 조사할 때면 1회성으로 급여에서 1-2천 원 공제되는 것도 아깝다고 했던 그녀가 친분도 없는 직원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입금했다는 것에 나는 그 속내를 알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휴직을 하고 나서 듣게 된 심리학 강의를 통해 나는 그 여직원이, 사이코패스보다 위험도는 낮지만 그 수가 많아서 사회에서 한 두 번쯤은 만나게 될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사실 그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왔던 것에 비해 말할 만한 에피소드가 그리 많지는 않다. 아이들 사이에서의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의 경우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나쁜 행위’들이 있지만 성인들의 왕따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직원과 여자팀장은 나한테 말을 전혀 걸지 않았고 소통이 없었기에 에피소드라고 할 만한 일도 많지 않았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이다. 아무리 급여가 높고 업무 만족도가 높더라도 인간관계가 무너지면 그곳에서의 생활을 지속해나가기가 힘들다. 반면에 업무강도가 높고 박봉이라도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오래 버텨낼 수가 있다. 특히나 외향적인 성격의 나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다른 부서의 회식자리까지 다 참석하며 동료들과 우정을 쌓았고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직장생활의 묘미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이직이라도 할 때면 정든 동료들을 매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직하기 한 달 전부터 눈이 붓도록 울고 다녔다. 이런 나였기에 그곳에서의 생활은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나는 이 외로움을 달래려 난생처음 코인 노래방에 가서 혼자서 노래도 불러보고 어떻게든 이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결국은 끝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휴직을 하게 된 결정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말로만 듣던 ‘일감 몰아주기’였다. 업무분장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여자 팀장의 요청으로 전 부서원이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여자 팀장과 텃세를 부리던 여직원은 본인이 맡은 일의 일부를 나한테 넘기기를 원했고 그 회의는 그야말로 일감 몰아주기의 상황으로 흘라가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굉장한 분노감에 휩싸였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과장님은 나에게 문자를 보내 그날 회의의 상황이 일감 몰아주기가 돼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고 다른 여직원들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나한테 텃세를 부렸던 그 여직원은 회의가 끝난 후 과장님과의 대화에서 본인이 서무 업무를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잡다한 일로 하루종일 바쁘긴 했던 것 같다면서 나를 편드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여직원한테 내심 그런 진심이 있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야 할 일인지 아님, 상급자 앞에서는 나를 생각해 주는 듯한 교묘하고 소름 끼치는 소시오패스의 행각에 경악을 해야 할 노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점점 감정이 소진되어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를 완전히 무너지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부서이동을 하기 직전, 나에게 오래전 그곳에서 근무했던 나와 같은 직렬의 여직원이 그 당시 겪었던 왕따사건에 대한 얘기를 해주며 그곳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고 귀띔을 해주었던 직원 중 한 명이 가끔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내 고충을 다 안다는 듯이 “여직원들이랑 안 친하죠? 잘 안 해줘요?”라는 질문등을 하며 나를 떠보았는데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 마음을 잘 알 것 같은 그 직원에게 가끔씩 힘든 감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직원에게 내가 겪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고 그저 “힘들다”, “짜증 난다”등의 감정상태에 대한 표현을 했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 말이 혹 새어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안 하면 정말 숨통이 막힐 것만 같았고 말이 새어나가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심 내가 이렇게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을 누군가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타 부서 직원에게 우리 부서 직원들이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내용으로 우리 부서의 여자팀장한테 전달이 되었고 그것을 들은 여자 팀장은 나와 과장님을 제외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이 사실을 공론화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팀장은 “OO 씨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죠”라는 말로 여자 팀장의 말을 잘랐고 그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으나 여자팀장은 기어이 이 사실을 과장님께 알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여직원들과 내 사이가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소외당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부터 소외된 채 생활하고 있었고, 내가 다른 직원에게 내 감정을 표현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저 그들에게 나를 소외시키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사건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를 소외시키고 있던 그들에게는 좋은 명분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여직원들에게 소외당하고 있는 나에게 눈물까지 보이며 위로를 해주시고 자주 말을 걸어주시며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과장님께서 나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 하셨고 평소에 그 누구보다 다른 직원들의 뒷담화나 개인사까지도 거침없이 말씀하시던 과장님께서는 모두가 있는 앞에서 굉장히 격양된 목소리로 다들 입조심하라고 큰 소리로 경고를 하셨다. 대놓고 나를 향해 경고를 한 것이 아니라 모두들 명심하라는 듯이 말씀을 하셨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경고라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 과장님께서는 다른 직원의 뒷담화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과장님께서 다른 직원의 험담을 할 때면 남자팀장은 항상 상대방의 편에 서서 입장을 대변하는 바람에 과장님의 화를 더 돋우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나는 남자팀장님께 과장님이 다른 직원의 험담을 할 때 그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가볍게 호응을 해 주시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 드렸던 적도 있었다. 과장님께서는 가벼운 뒷담화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의 개인사나 급기야는 범죄행위에 가까운 직원의 과거 행실에 대한 얘기도 서슴없이 하셨고 그럴 때면 다른 직원들은 그 얘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으며 호응을 해주는 분위기였는데 그랬던 그들이 나를 향해 입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험담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사실상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민원인들에 대한 얘기나 상급자들을 향한 불평, 불만을 털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순간적인 자신의 기분을 감당하지 못해 충동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한 험담이 당사자에게 전해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한 나의 험담이 나한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 인격을 심하게 모독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저 그 사람은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나 보다 하고 넘겨버렸고 사실상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을 한다 해도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나의 행동들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탓에 나의 고충을 그런 방식으로 해소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내가 한 얘기를 공론화시키고 기어이 과장님께 그 내용을 전달한 그 여자 팀장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심해지는 항암제 부작용도 버거웠고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무렵,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던 타 부서의 남자 실장님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새로운 여자실장님이 오시게 되었는데 새로운 여자실장님이 온 이후로는  과장님이 매사에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트집을 잡고 신경질을 부리는 일이 많았고 어느 날은 야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지하철에서 과장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나한테 입조심을 하라는 경고를 날렸던 그녀는 새로 오신 여자실장님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선입견도 없던 나에게 여자실장님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을 하셨다. 나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생활에 질병휴직을 내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계속 예민한 모습을 보이셨던 과장님께서는 내가 휴직을 하려던 날짜보다 앞당겨서 빨리 휴직을 할 것을 계속적으로 종용하셨다. 새로 오신 여자 실장님의 업무는 직원들이 하는 업무의 관리감독뿐만 아니라 직원들 사이의 갑질, 성희롱, 왕따등의 문제를 관리하는 분이셨는데 아마도 눈치 빠른 여자 실장님께서 내가 그곳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챌까 봐 조바심이 나셨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새로 오신 실장님께서는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내게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며 “OO 씨는 왜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 해?”라는 질문을 하시기도 했다. 아무튼 계속되는 재촉에 떠밀려서 나는 계획했던 날짜보다 더 빨리 휴직계를 낼 수밖에 없었고 고통스러웠던 그 부서에서의 생활은 7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7개월간 그 힘든 시간들을 버텨낸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래. 이만큼 견뎠으면 됐다’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내가 휴직을 하고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미디어를 통해 한 지방 공무원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자살한 공무원이 친구와 나눈 카톡의 대화내용을 보고 내가 휴직하기 전에 지인과 나누었던 카톡내용과 너무도 흡사해서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지인에게 내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카톡을 보냈었고 그럼 점심은 어떡하냐, 밥은 같이 먹느냐는 지인의 질문에 나는, 같이는 먹는데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살한 공무원의 카톡에서 이와 매우 비슷한 카톡 내용을 보고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휴직을 한 후 한참이 지난 후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가끔씩 일기를 쓰기도 하고 그간에 내가 겪은 일들이나 생각들을 써 내려가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무원 투명인간’의 검색어로 방문자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참담한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씁쓸하게 느껴진다. 휴직계를 내고 마지막으로 근무를 하고 나오던 날, 나한테 인사를 하라고 권하는 과장님의 말씀에,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정면만을 응시한 채로 허공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던 여직원이 떠오른다. 내가 떠난 이후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눈에 가시 같았던 내가 떠난 이후 마음이 후련하기라도 했다면 좋겠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면 그들에게는 정말 내가 먼지만도 못한 존재였던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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