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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책방 Mar 30. 2024

투명인간Ⅰ

공직생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는 나로 인해 무거운 물품을 옮겨야 할 때면 나보다 10살 이상 어리고 여리여리한 동료 여직원들이 내 몫까지 대신 일을 해야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매번 사과를 하거나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고, 그렇다고 당연하듯이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동료 여직원들은 싫은 내색이나 불평 없이 나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동료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에 희망 근무지를 조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나는 무거운 물품을 옮겨야 하는 일이 없는 다른 부서로 희망 근무지를 작성하게 되었고 감사히도 내 의견이 반영되어 나는 얼마 후 내가 지망했던 근무지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며 응대를 하는 업무에서 상위부서의 서무 업무로 발령이 난 것인데 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하기 전 날 몇몇 직원들로부터 우려 섞인 말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근무지에는 나와 다른 직렬인 직원들만 모여있는 곳이라 내가 소외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나와 동일한 직렬인 직원이 그곳에서 근무를 했다가 심한 왕따를 당했던 사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이 좋게도 늘 좋은 동료들과 함께 했었고 직장 내 갑질이나 텃세, 따돌림 등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런 얘기들이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같은 여자로서 암으로 투병 중인 나한테 설마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겠나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나는,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들도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부서이동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그동안의 내 생각들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에 근무했던 곳과는 달리 새로운 부서에서는 조직의 문화적 특성을 좀 더 깊게 느낄 수가 있었다. 외부에서 바라봤던 공직사회에 대한 편견들이 편견이 아니었음을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직원들은 매우 경직되어 있었고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유난히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6급 이상에게는 주어진 업무가 거의 없어 보였는데 주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를 했던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연봉이 많아질수록 그에 맞게 막중한 업무와 책임이 뒤따랐고 직원들이 10시까지 야근을 할 때면 이사님께서는 11시까지 근무를 하셨다. 그들이 매우 높은 연봉을 받는 것에 수긍이 갔고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이해가 되지 않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대부분 2년에 한 번 꼴로 이루어지는 잦은 인사발령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수인계로 인한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나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야 인식한 문제였다. 공무원들의 잦은 인사발령과 인수인계 문제는 이미 의원면직을 선택한 공무원들의 SNS만 봐도 면직사유에 항상 꼽힐정도로 악명이 높았고 현직 공무원들이 인수인계 문제를 콩트형식으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도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공무원 인수인계’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하면 비슷한 내용의 경험담들이 쏟아지는데 후임자가 발령이 나는 동시에 전임자도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전임자와 후임자가 함께 근무하는 기간이 없으니 인계를 해줄 수가 없다는 것과 같은 사무실의 동료나 선임들도 해당 업무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으며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임에도 발령 난 직후부터 담당자가 되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어떤 신규공무원은 출근한 첫날 민원인이 “아동수당 청구하러 왔어요”라고 하는데 본인은 아동수당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민원인은 상대방이 업무를 전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일을 못한다는 인식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공무원들이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인재들임에도 일을 잘할 수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문화라던지 상급자들에게 주어진 업무가 거의 없는 것은 오래전 국내기업에 잠시 근무했을 때도 경험을 해봤지만 가장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잦은 발령과 인수인계 문제였다. 직장을 어느 정도 다니면 업무에 능숙해지면서 안정기가 와야 하는데 2년에 한 번꼴로  발령이 나고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늘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고 새로운 업무를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이 나고 처음 1년간은 그때그때 주어지는 업무를 여기저기 물어봐가며 해내기 바쁘고, 그렇게 물어물어 업무를 하다 보니 2년 차에도 1년 차에 했던 업무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100% 능숙할 리 없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은 마치 윤회의 수레바퀴처럼 되풀이된다. 일을 하러 나온 곳에서 일을 하는 법을 모른다면 그보다 더 답답할 일이 있겠는가. 잦은 발령으로 인해 일부 직원들은 2년만 대충 때우면 된다는 책임감 없는 생각으로 일을 하기도 할 것이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나랏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었다.한 번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한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정신과에 갔던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틈타 근무지 근처의 병원에 방문을 했고 불면증의 원인이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한 것임이 명확했기에 의사한테 내 얘기를 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기에 간단히 이유를 설명하고 수면제 처방을 요청했다. 그런데 의사는 진료 전 내가 작성한 설문지의 직업란에 체크된 것을 확인하고는 “공무원들은 인수인계가 없다면서요?”라고 대뜸 물어보는 것이다. 인수인계 문제로 많이 괴로워하던 어느 공무원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 네... 뭐.” 대충 대답을 하고 나왔는데 마음이 씁쓸했다.


새로 발령 난 부서에는 여자과장님과 인사를 담당하는 여자팀장, 서무를 담당하는 남자팀장과 한 명의 여직원이 있었고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다른 부서의 남자실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직장에서 성인들이 겪는 텃세나 왕따는 아이들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텃세를 부리거나 왕따를 시킬 때 아이들처럼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말을 대놓고 한다거나 폭행을 하지는 않지만 교묘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가해자는 피해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이런 상황을 동료나 상급자에게 말을 했다가는 자신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런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이 마흔에 처음 경험해 보는 텃세와 왕따로 그들의 심리가 궁금하여 유치하게도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것이 그들의 공통된 습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밟아도 될 사람만을 정확하게 선별하여 밟는다.


나는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서 가버린 자리가 아니라 내가 투입이 되면서 원래 그들이 맡아서 했던 업무를 조금씩 떼어 받아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내가 맡은 업무의 전임자였다. 그들 중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여직원 한 명이 주로 나에게 업무 인계를 해주었는데 그녀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업무를 잘 가르쳐주지 않거나 대충 가르쳐주고 질문을 하면 퉁명스럽고 기분 나쁘게 대할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단 한마디도 걸지 않고 나를 투명인간 대하듯 했다. 내가 해당부서로 발령이 난 지 이틀째 되던 날, 여자팀장은 이런 기운을 감지하고는 점심시간에 나와 그녀를 데리고 나가 커피를 사주면서 이런저런 조언들을 했는데 나에게는 모르는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물어볼 것과 한 번 들었던 내용이라도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모르겠으면 눈치를 보지 말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동안의 인계 방식에 대해 기분 나쁘지 않게, 하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지적을 했는데 그렇게 설명을 해서는 알 수가 없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상세히 가르쳐 줄 것과 혹시 한 번 알려주었던 것을 또 묻더라도 짜증 내지 말고 대답해 줄 것을 조언했다. 나는 그 여자 팀장의 말끝마다 네. 네. 하고 대답을 했는데 그 여직원은 심통이 났는지 듣는 내내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업무 중에는 ‘국민신문고’를 담당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국민신문고를 통해 들어온 민원을 해당부서에 전달하고 해당부서에서 답변이 오면 내가 그것을 등록해 주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 자리에서 내 아이디로 로그인이 된 전산시스템으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한 건의 민원처리를 하는 과정을 시범을 보였는데 얼마나 대충 알려줬는지 등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상위기관 담당자에게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상위기관의 담당자는 짜증 섞인 말투로 모든 게 엉망으로 등록이 되었다며 틀린 부분을 한참을 열거했다. 또 한 번은 몇몇 타 부서의 관리자들에게 돈을 입금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인계를 해줬던 그 여직원에게 관리자들의 계좌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그녀는 그동안의 문서를 다 뒤져보라고 했다. 나는 일 년 치의 해당 문서를 다 찾아보고 나서야 그들의 계좌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의 계좌번호는 아무리 찾아봐도 어느 문서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놓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 년 치의 문서를 다시 한번 훑어봤지만 어디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없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좌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그 관리자가 근무하는 곳에 전화를 했는데 내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는 남자 팀장이 다급하게 나한테 전화를 끊으라며 그들의 계좌번호는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었던 그 여직원이 다 알고 있으니 전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식의 교묘한 엿 먹임을 몇 차례 겪고 난 후 나는 그녀가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줄 의지가 전혀 없음을 깨닫고 더 이상 그녀에게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그곳으로 발령 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는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을 때 남자팀장한테 주로 질문을 했는데 그분은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기 싫다거나 나쁜 의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본인한테 주어진 업무량이 과다하여 본인의 업무를 처리하기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내가 묻는 질문에 원하는 만큼의 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내가 맡은 일은 잡다한 일이 많을 뿐, 난이도가 높은 일은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가 조금만 힌트를 주면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들에 한 번씩 그 여직원의 교묘한 엿 먹임까지 더해져 이따금씩 극도로 화가 나기도 했는데 이성을 잃은 상태로 일을 하다 보니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고군분투를 하고 있던 중에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던 다른 부서의 남자실장이 나에게 간단한 팁을 주었는데 모르는 업무가 있으면 다른 지역에서 나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나 상위기관의 담당자한테 일을 물어봐가면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 조직이 처음인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의 전임자들이 한 사무실에 모두 남아 있었고 보통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를 나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내가 속해있는 부서의 선배나 동료들에게 배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담당자한테 물어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간단한 팁 덕분에 이후로는 모르는 업무가 주어졌을 때 다른 지역에서 나와 같은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나 상위기관의 담당자에게 업무를 물어가면서 했는데 쪽지나 메신저로 업무를 물어볼 때면 내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너무 바쁘시겠지만,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이런 초보적인 질문을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만” 이런 식의 쿠션어를 사용해 가며 나를 한없이 낮추고 납작 엎드려서 질문을 했고 답장이 왔을 때 싸늘하고 냉소적인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따뜻하고 친절하게 답을 주는 이들을 기억했다가 업무가 막힐 때마다 그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같은 사무실 안에 내가 맡은 업무의 전임자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다른 곳에 이렇게 구걸하듯 업무를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서럽고 참담하게 느껴졌다. 간혹 내가 업무를 몰라 헤매고 있으면 큰 인심이라도 쓰듯 업무매뉴얼을 읽어보고 숙지하라며 주기도 했는데 사실상 업무 매뉴얼이라는 것도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듣고 기초적인 업무 파악은 된 이후에 읽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는 업무 매뉴얼을 읽어도 숙지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텃세를 부리던 그 여직원의 업무능력은 나쁘지 않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사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직원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상급자가 아니라 후임자나 후배들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내가 맡은 업무의 대다수가 그 여직원이 해왔던 업무였는데 그 여직원이 업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가 하필 내가 맡고 있는 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운이 좋게도 그 여직원은 본인이 업무를 맡고 있는 동안에는 미흡한 업무처리로 인한 항의가 없었기에 실수가 노출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처리해 왔던 서류들을 보면서 특정 직원에게만 동일한 물품이 5번 이상 지급된 사실등 심각하게 엉망으로 처리된 업무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고, 그 여직원이 잘 못 처리한 것을 수습하는 일도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한동안 그 여직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가장 나쁜 사람이 ‘텃세’를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텃세는, 상대방과 내가 어떤 의견충돌이나 마찰로 인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질만한 에피소드가 전혀 없었음에도 그야말로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새로 온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상대방에게 못되게 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말 상종 못할 사람으로 생각해 왔다. 그 여직원이 나한테 그렇게 대한 것이 단순한 텃세일까, 아니면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었던 것일까를 많이 생각했었다.


깊게 생각하다 보니, 이것이 단순한 텃세가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그 여직원이 나한테 감정이 상했을 수도 있었을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이전 근무지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으로 주말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 당시 당직담당자였던 그 여직원은 내 메일로 당직 매뉴얼을 보내주었고 주말 당직임을 알리는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함께 근무하던 여직원들은 첫 당직은 누군가가 같이 순찰을 돌아주면서 한 번은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며 처음에는 절대 매뉴얼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도 첫 당직을 섰던 날은 누군가가 같이 당직을 서면서 순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당직 담당자였던 그 여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내용들을 얘기하며 고충을 토로했는데 그 여직원은 끝까지 당직을 혼자 설 것을 주장했고 결국 나와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 주말 약속을 깨고 당직을 함께 서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 여직원이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이 있었다면 아마 그 일로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 여직원과 같은 부서로 발령이 난 후에 내가 그 여직원에 이어 당직 담당자가 되었는데 신규임용자의 경우 당직 담당자가 한 번은 당직을 함께 서며 순찰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업무를 태만히 하면서 고충을 토로하는 나를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나마 한 명의 여직원이 나한테 텃세를 부리는 일 정도였는데 새로운 여자팀장이 오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새로 온 여자 팀장은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처음 얼마간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나쁘지 않았다. 당연할 것이 이제 막 부서에 새로 온 직원이 기존 직원에게 못되게 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빨리 분위기 파악이 완료된 그녀는 본인과 같은 직렬인 여직원 쪽으로 노선을 굳힌 듯 그 여직원을 따라 슬슬 나를 싸늘하고 퉁명스럽게 대하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렇게 나는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왕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왕따가 아니라 공무원답게 품격 있는 은따를 당한 것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서서히 투명인간이 되어 갔다. 그 당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외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보다는 음식을 주문해서 각자 자리에서 먹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이 나한테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한 번은 점심시간에 외부 식당에서 그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식사 자리에 같이 앉아있기만 했을 뿐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를 못했고 그들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서로 눈을 마주쳐가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한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이 이야기를 듣게 된 내 친구는 듣는 내내 먹먹함을 표현했었다.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 주변의 공직자들을 통해 이런 식의 왕따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매우 충격적인 사례들에 대해 들었지만 그건 그냥 일부일 거라 생각을 했고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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