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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Sep 13. 2021

[직장인의 하루] 우리의 운명이 스치다

내가 떠난 자리, 네가 떠난 자리


지리멸렬함을 느끼며 박차고 나온 "최종 책임자"라는 자리. 그 자리는 누군가에 의해 채워진다. 내가 있던 그 공간과 그 자리는 새로운 누군가가 채우게 된다. 내가 하던 책임과 역할을 맡고, 내가 마주하던 이들을 마주하며, 나와 비슷한 여건과 상황 속에서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려야 하겠지. 나는 그 위치가 어떤 위치이며, 어떤 무게와 중압감을 주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결국 그 중압감에 사지가 짓눌려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내 공간을 채우게 될 누군가는 의욕과 희망을 가득 안고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마치 나의 첫 시작이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첫 시작이 있었고 첫날이 있었다. 나 역시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모든 것이 새롭고 뿌듯했다. 내 의지대로,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졌고, 나는 잘하고 더 잘하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무수한 세월이 지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고, 내 주변 상황도 크게 변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중요하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때 온 힘을 다했던 것들에 대해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나에게는 더 새로운 것, 더 중요한 것이 생겨났다. 그랬더니 예전에는 이겨낼 수 있었던 것들도 더 이상 이겨내기가 어려워졌다.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닌 것에 온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몹시 괴로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작과 끝은 대부분 이런 패턴인 것 같다. 
중요했던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삶의 기로마다 취사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 떠난 자리. 그 자리는 늘 누군가로 채워진다. 

연인들에게도 끝이란 것은 존재하고 그 자리는 더 나은 이들로 채워진다. 절친이라 불리던 이들이 사라진 자리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로 채워진다. 나 아니면 안 될 거라고 호기롭게 박차고 나온 그 회사도 나 없이 잘 돌아가며, 내 자리는 금세 다른 이로 채워진다. 믿었던 직원이 퇴사를 하더라도 월등히 우수한 직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떠난 그 자리는 새로운 이로 인해 더욱 빛나기도 한다. 


사람은 오고 간다. 어찌 보면, 나도 누군가가 떠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있던 자리를 돌이켜볼 필요도, 내가 아닌 누군가로 채워진 그 모습을 딱히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선택한 오늘을 열심히 살아볼 뿐이다. 


나의 끝을 시작하는 너와, 너의 끝을 시작하는 나, 우리의 운명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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