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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Aug 20. 2021

퇴사 사유, 이것만은 피해줘

적당한 퇴사 사유를 찾아서

대표님......(정적)

100%다. 퇴사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정도로 오랜 기간 회사를 운영한 나는 실로 수많은 입퇴사를 지켜보았다. 입사를 하고자 하는 열정과 각오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퇴사의 사유는 제각각이다. 나도 일개 월급 사장이자, 많은 이들의 선배였고, 한 때는 팀원이었기에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회사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퇴사를 바라본다.


우리는 왜 회사를 다니나? 무엇 때문에?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




1.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느낍니다.

3년을 근무한 A 직원이 말한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회사에서는 이 직원에게 정기적으로 고급 수준의 교육을 부여했고, 이 직원은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많았으며, 다른 직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제야 시니어로서 부서 팀원들을 가이드해주고, 배움을 나눌 때가 되었지만, 그녀는 "그동안 힘들게 쌓은 나의 지식과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했다. 입사할 때 "이 회사에 크게 기여하고 싶다"며 강하게 어필을 했던 이 직원은 나갈 때는 "이 회사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회사는 교육의 의무가 있기에 업무 수행에 적절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고 직원의 수준에 맞는 새로운 업무 기회를 부여하지만, 교육 기관은 아님을 잊은 걸까. 언제부터 회사가 공부와 배움의 터전이었던가. 언제까지나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만은 없는 것이 직장생활일터, 떠난 그는 아직도 어디선가 "배우고" 있을까.




2.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느낍니다.

5년을 근무한 B 팀장이 말한다. 이 회사에서 내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왜 더 올라갈 곳을 바라봤던 것일까. 사내에서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직원들은 매일같이 불꽃 튀는 플레이를 하고 있고, 점심시간을 할애해서 온라인 교육을 듣는 직원, 새벽에 영어 수업을 듣고 출근을 하는 인턴 직원들 중, 몇 년째 스스로의 발전은 잊은 그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팀장이지만 팀원들 중에 가장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주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못했고, 외국 고객과의 미팅을 팀원에게 미룬다.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 채 20대 직원보다 정보와 지식의 습득력이 늦어 늘 팀원들에게 묻기 바빠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에는 회사의 그릇이 작아 더 이상 올라간다고 믿고 떠났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늘 같은 업무 스펙트럼과 매너리즘 속에 발전을 꾀하지 못하였기에 어차피 더 이상의 승진은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그는 조금이라도 짐작했을까?




3.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갑내기 직원 두 명. 그중 한 명이 말한다. 저 직원은 이번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회사에서는 capacity에 맞는 담당자를 배정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남에게 부여되는 것은 필히 나에게도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는 모를 것이다. 저 동료가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팀장에게 어떻게 업무 보고를 하고 있고, 고객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으며,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하고 있고, 업무 능력이 얼마나 급성장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인지,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회사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하고 싶거든 자신의 퍼포먼스와 업무 태도가 객관적으로 상대와 비등하거나 그보다 우수한 수준이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4. 나의 꿈을 찾고 싶습니다.

일 년 남짓 근무한 직원이 말한다. 사실 나의 꿈은 이게 아니었다고.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매니저가 사실 나의 꿈은 배우였다고 선포하며 꿈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 힘들다고 퇴사하겠다고 한다. 면접 볼 때 앞으로의 목표가 프로젝트 경험을 많이 쌓아 유능한 개발자가 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았던가. 배우가 꿈이라 향후 1년 뒤 퇴사할 사람이었다면 도대체 누가 그를 채용했겠는가. 다른 우수한 지원자들을 탈락시키고 그를 채용했었던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사실 내 꿈은 개발자가 아니라 배우였다"라는 멘트나 "사실 너는 내 숨겨둔 아들이다"라는 막장 드라마의 멘트나 허무하긴 매한가지. 다른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취업의 기회와 장기근속자들과 함께 오랜 기간 합을 맞추며 일하기를 희망했던 바람이 빛을 잃었다. 감춰왔던 나의 꿈은 접어두고 <업무를 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정도로 마무리 하자.




나는 무엇을 위해 회사를 다녔던가. 돈과 경제적 자유. 그뿐이었다. 타고난 문과 재질인 내가 어찌하다 IT 기업의 대표까지 맡을 수 있었을까. 난 그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살았고 일단 궤도에 오르면 악착같이 유지를 했다. 그렇게 감성 충만한 문학소녀였던 나는 10여 년이 넘게 IT 산업의 중심에서 회사를 이끌며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가슴에 사직서를 품은 것 치고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일했으며, 나름의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회사를 떠났다. 물론 나는 회사에 내가 왜 퇴사를 하는지 사실대로 고하지 않았다. "내 꿈은 사실 브런치 작가였어요" 같은 TMI 폭탄을 던질 필요는 없었고, 나의 잘남이나 회사의 못남을 따지지도, 떠나는 마당에 회사의 탓도 어떤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다. 적당한 퇴사 사유를 찾아서 진심 어린 고민을 담아 퇴사 의사를 전했고, 서로의 성공을 빌어주던 우리의 헤어짐은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만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퇴사를 하고 싶을 만큼 불만이 있거나 고민이 있는 경우 한 번쯤은 꼭 직속 상사나 HR 등 책임자와 생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자신만 알고 있던 불만에 대해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사직서와 함께 불만을 쏟아놓으면 주워 담기가 어렵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회사가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진다는 소리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매니저는 나의 노력을 다 알고 있겠지라고 짐작하지 말자. 상사들은 생각보다 바쁘고, 생각보다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자신의 업적을 시의적절하게 알리고 꾸준히 어필하자. 그리하여 회사를 통해 득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을 득한 후, 인정받고 박수 받으며 기분 좋게 퇴사를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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