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Aug 22. 2023

배추와의 대화

- 배추 입양 보낸 썰

- 이 이야기는 지난 김장철 끝물에 있었던 일이다 -


사진 속 주인공은 절대 카트나 다른 운송 도구 없으면 구매할 수 없는 품목이. 그러나 며칠째 마트를 지날 때마다 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저 초록 망태기 "너 김치 담그는 것이 취미라며 그러면 날 데려가야지"라고 속삭인다.  어느 날 너의 구애를 못 이겨 한참이나 너를 쳐다보다가 제일 작아 보이는 크기의 배추가 너 같아서 초록망태기 더미에서 너를 골랐다.


너 정말 무겁더라.  상상 그 이상!! 한 손엔 이미 쇼핑백이 있어 너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면 나는 정말 미친 짓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다음 날이면 네가 깡그리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 며칠간 했던 너와의 눈싸움이 정겨워  한 망을 들고 마트 건너편 버스 정류장까지 온몸으로 낑낑대며 걸어갔다.  이렇게 무거울 수가 아~ 놔~  정말.   그런데 기어코 샀구나 이런 미친 에미나이 안 먹고 말지를 외쳤어야지!!  그대의 엄청난 매력 몸값을 여기에 이르지 않았구나.  세 놈 모두 해서 4,990원.  내가 그토록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정적 사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놀라움을 표하신다.  아이고 이걸 사셨어?  집이 어딘데 이걸 샀어?(집까지 들고 가야 하는 내가 걱정되신 듯 ㅋㅋ) 본인도 사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나 못 샀지 묻지도 않는데 이분 또한 배추에 대한 짝사랑이 절절하시다.  내친김에 아주머니 저 진심인데 하나 드리고 싶어요, 저 이거 사면서 하나는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제발 하나 받겠다고 하셔라 당신이 나의 구세주가 되어야 해,  머릿속은 난리도 아니다) 누굴 주어야 할지 대상이 없다고 했더니 잠시 생각하신다 그분도 이미 양손에 장본 물건이 그득하다.  하나 주세요 그러시며 주머니에서 1,500원을 꺼내주신다.  손사래를 쳤지만 그래도 그런 게 아니고 그래야 본인도 맘이 편하시단다.  나는 받아 주신 것만도 너무 고마운데.  그렇게 세 놈 중 한 넘이 다른 가정으로 보내졌다.  두 놈이 든 망을 드니 세상 가볍다.  버스가 왔는데 그분도 같은 버스를 타신다.  따님이 그 버스를 타고 오니 들어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배추를 받으셨던 터라 딸이 있는지 확인하신다.  다행히 딸이 저 뒤에 있구나.  딸보유자, 1초 부러웠다 그래도 무자식 상팔자인 내가 "1승"라고 소심하게 말해본다!!


버스에서 내려 배추를 들었는데 처음 그 망태기를 들고 걷는 동안 너무 힘을 다 빼서 그랬는지 세 놈 다 있을 때 보다 더 무겁다.  아..... 이런 된장할 ㅎㅎㅎ.  메는 이럴 때 있어야 하는데 집에 머슴이 하나로는 부족하구나. 하나가 출타 중일 때 대타도 있어야 하는데 하며 혼자 킥킥거리면서 망태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집으로 왔다.  현관에 두고 하루가 지나도록 방치했다 너무 무거워 잠시 만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성비 최고의 배추고 나발이고 내가 병날 각이.


담날 퇴근하고 너를 다시 보니 이제 맛난 것을 해 먹어야겠다는 힘이 생기더라.


배추 말이.  달큼하고 맛있다.  

만두소를 넣고 팬에 살짝 구워 먹는 것도 하고 싶다.  그래 좋아하는 것 다 해 드시오.  저렇게 큰 배추가 두통이나 있는데 뭘 못하겠나!!


이제 혼자일 때 너무 용감한 장 보기는 하지 마라.  자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몸살이 말이나 되냐고!!!






작가의 이전글 불꽃놀이와 안산에서 온 그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