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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18. 2023

두문불출의 소망을 이루다

- 풀벌레 소리 가득한 행복한 집콕

인이면 누구나 종종 소망한다 퇴.사.를.

30+N연차 직장인이었던 나도 참으로 자주 이 소망을 곱씹으며 직장을 다녔다.


그 사이 퇴사를 실행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9년 동안 두 번 퇴사할 뻔했다.  일도 지겨웠고 무엇보다 매일 회사를 가는 그 행위가 30년 이상 계속되다 보니  밥을 굶는 순간이 올지언정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회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진솔하게 예의 바르게 날마다 집을 나오는 행위를 그만하고 싶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출근 시간도 늦추고 출근이 너무 싫은 날은 재택을 해도 된다는 설득 끝에 퇴사를 또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직장인이,   또 일이란 것이 그런가 늦게 오란다고 늦게 출근이 되나.  그래도 너무 힘든 날은 늦게 출근도 했지만 마음은 늦은 시간의 수십 배로 불편했다.  변함없는  출퇴근이 이어졌고 병이 온 것처럼 진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고 은밀하게 사부작사부작 퇴사 시기를 정했다.  


드디어 D-Day를 정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친구가 "정년퇴직하면 실업급여받을 수 있대." 뭔 소리니? 그런 게 정말 있다니?  세.상.에.나.!! 그럼 나도 받는 거야!!!  난 야무진 꿈에 부풀었다.  혼자 알차게 그려본 그림 - 실업급여를 받으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약간의 휴가 같은 구직기간-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지 않나.  왜 휴가 같은가? 나는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물러나 주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전문 직종이 아니고서야 평범한 직장생활로 이 나이가 되어 퇴직했다면 어떤 기업도 내 나이의 사람을 절.대.로. 채용하지 않는다. 내가 이력서를 받을 때도 지원자를 걸러내는 기준의 상위 3가지 중 하나가 나이였으니 말이다. 섭섭할 것도 없다 세상이 그런 것이다. 아무리 구직활동을 해도 난 채용될 가능성이 거의 "빵"이라는 아주 강한 느낌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사 휴가 같은 느낌이다.  법정 정년퇴직 나이는 60세, 아까비 조금 모자란다.  그렇다고 어쩌겠어 어려서 안된다는데.  이 나이에 나이가 부족해서 안 되는 일도 경험하니 블랙코미디 는 것 같았다.  정년퇴직은 물 건너가 버림.  일하기 싫으면 알아서 퇴사해야 된다.


그런데 계획보다 빨리 퇴사하게 되었다.  삶은 절대 우리가 바라거나 계획한 대로 친절하게 굴러가지 않으며 오늘은 웃고 내일은 울고 모레는 울다가 웃게 되는 오만 것의 짬뽕스런 것이다.  그것이 또 사는 것의 묘미이기도 하다.  회사는 경영상의 문제로 5개월 동안  근무 시간과 급여를 조정하자고 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깊게 그리고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간의 짬바로  5개월 뒤 회사가 나에게 해올 이야기는 뻔했다 - 그 상태를 연장하거나 급여만 조정하거나.  때가 왔나 싶었다. 회사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고 나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회사 나를 내보내기 위해  권고사직이란 것을 시켜야 한다. 회사는 직원을 해고하거나 권고사직 시키면 고용노동부에서 주는 지원금에 불이익이 있으니 정년퇴직을 시키면 퇴직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는 나를 정년퇴직 시켜 보려 했지만 나는 법정 퇴직 연령 60세 보다  어린 관계로 정년퇴직이란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이미 다 알아보았는데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회사야. 나는 나의 마지막 직장에서  웃기지도 않게 권고사직을 당하여 실업급여라는 것을 결국 받게 되는 뭐 그런 사태를 맞게 되어  퇴사대첩은 조기 마무리됨.


퇴직을 꿈꿀 때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두문불출이다. 정말 그 긴 시간 동안 매일 시간 맞추어 어디를 가는 것은 대체로 힘든 일이지 말입니다. 그래서 정말 가능하다면 어디 가는 것을 하지 않겠다 질릴 때까지 그리고 지금 매일 같이 일요일인가 토요일인가 하면 두문불출을 잘 실행하고 있다.


내가 출근하면 하루 종일 혼자 심심했던 집은 이제 내가 만드는 온갖 소음과 맛난 음식의 냄새로 찬다 집도 친구가 생겨 좋을 것 같다.  집이 이리도 좋았단 말인가 하고 새삼 행복이구나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는 자유.  이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오장육부가 벌렁거린다.  나는 이제 시간부자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자이다.  시간부자인 내가 할 일은 시간부자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촘촘하게 하며 럭셔리 한 삶을 즐기는 것이다.   돈이 없는데 럭셔리가 돼 간니? 그람요.  시간 럭셔리 장착 이미 되었고 그리고   없어도 행복하다.  돈 없이도 행복해지는 방법은 세상에 널려있고 나는 그것을 쇼핑하듯이 하나씩 선택하면 되더라.  


사는 것은 때로 선물 같다(왜 실업급여받게 돼서? ㅎㅎ 넹).

그리고 나에게 퇴직이란? 시간부자가 되는 찬란한 순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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