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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Jan 19. 2024

아들 욕실에서 뭐 하니?

씻고 온다던 아들. 평소 샤워시간보다 더 걸리고 나오지를 않는다.

물소리가 끊기더니 이내 쓱쓱 솔질 소리가 들린다.

또 청소도구로 무슨 장난을 하고 있나 싶어서 몰래 살금히 들여다보니(평소에 문을 본인이 꼭 닫지 않고 씻음. 몰래 열어본 건 아님) 샤워를 다한 알몸으로 열심히 욕실을 청소하고 있다. 야무지게 바닥에 청소세제도 뿌려서 줄눈이 벗겨지도록 솔질을 하고 있다.

“ 원아. 뭐 하는 거야? 청소해??”

“ 어 엄마. 내가 청소 싹 하고 마무리하고 갈 테니 그런 줄 알아”

세상에 맙소사. 욕실청소는 엄연한 아빠의 구역이었는데 나조차 손꼽아 몇 번 한 적이 없는데 중2의 사춘기 아들이 자발적으로 아주 열심히 청소를 한다.

이건 무슨 형태의 사춘기 심리인지 감도 오질 않는다.

일단 뭐 해준다니 흔쾌히 칭찬 한방 날리고 기다린다. 소리를 들어보니 세제 풀어 솔질을 하고 샤워기로 헹구고 마무리 물기까지 아주 싹 쓸어서 끝낸다. 유리창과 세면대는 수건으로 닦는 디테일한 마무리까지.

마침 아빠가 일주일정도 해외 출장을 가 있는 터라 가기 전에 청소를 해놓고 갔지만 돌아올 때까지 내가 굳이 할 일은 없어서 뒀는데 그 역할을 아들이 해주고 있다. 기특한 마음에 표현을 과하게 하지 못하는 엄마의 최대치를 끌어 올려서 칭찬을 마구 한다.

“ 운동하고 와서 힘든데 청소를 이렇게 열심히 해주고 너무 고마워. 근데 청소하는 건 어떻게 알고 이렇게 세세하게 잘하는 거야?”

“ 아빠랑 샤워하고 나면 아빠가 하는 거 내가 잘 봐뒀지. 어때 잘한 것 같아?”

“ 그럼 완전 최고!! 엄마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잘하는 거 같아.”

“ 내일은 안방 욕실 청소 할게. 엄마가 절대 하지 말고 있어”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내일의 청소까지 예약을 해놓는다.

평소 아빠가 청소하는 거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다 보고 있었구나 싶어 괜히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방학하고 아빠가 해외출장이 많아져서 집을 자주 비우는데 욕실청소에 간간히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도 하고 저녁준비할 땐 상추도 씻어준다.

다정한 사람이 좋아서 다정한 남편과 결혼했더니 아들마저 다정하다. 물론 그 나이대의 장난과 간간한 투닥거림은 있지만 이런 행동과 표현조차 감사하다.

나중에 며느리에게 원망 듣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잘 가르쳐놔야 하는데 꽤 잘하고 있는 거 같다.

기특해서 영상을 찍어서 해외 있는 남편에게 보냈더니

“ 내가 하는 거 봤구나. 앞으로 행동 더 조심해야겠다” 이런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 유독 아빠를 더 따르고 더 좋아하는 아들이라 그런지 아빠가 하는 모습 행동을 그냥 보지 않나 보다. 근데 왜 맨날 아빠는 책을 보는데 그건 안 따라 하는지... 스며들듯이 책 보는 것도 따라 하리라 굳게 믿어본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방학 시기지만, 함께 집안일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 주제로 이야깃거리가 더 많아지고 그것 또한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학교등교할 때 가는 길에 분리수거하라고 박스 한 아름 안겨줘도 교복 입고 버리고 가는 아들이 새삼 감사하다.

엄마는 공부 열심히 하는 아들 모습도 좋지만,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해주는 아들 모습이 훨씬 더 멋있는 것 같아.


김미경 님의 <마흔 수업> 책에서 본 이 내용이 딱 떠올랐다.
What은 자녀교육에 필요한 과목이고, How는 살아가는 태도를 말한다.
What은 함부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이들한테 맡겨도 된다. 부모가 집중해야 할 것은 How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태도 말이다. <중략> 자녀가 부모의 괜찮은 부분을 자기 인생의 표준값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잘 되는 집안을 보면 대부분의 부모의 How가 남다르다. 부모의 살아가는 태도가 집안의 기본 실력이 되는 것이다.


아들의 괜찮은 표준값이 되고 싶어졌다.


제목사진: 픽사베이

본문사진: 본인의 동의하에 찍고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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