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이 좋다는 걸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냥 걸어야 하는 시간들이 내게 주어졌다고, 혹은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만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걷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걷고 있는 시간들이 행복하다는 걸 진정 느낀 순간이 있다.
여행이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계획했던 유럽배낭여행은 걷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유럽 곳곳의 나라들을 나의 발로 걸어가며 내가 알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과 다양한 풍광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내 눈에 담아 조금의 시간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그 당시 유럽배낭여행을 자주 했던 사람을 만났었다.
새벽에 운동화 끈을 조이며 나갈 준비를 마친 나를 보고 "아니 벌써 출발하려고?"라고 반문했는데 저녁 12시가 넘어 들어오던 나를 보고 자다가 눈이 동그래져 쳐다보는 그 사람의 말이 가관이었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유럽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너만큼 새벽같이 일어나 나가 자정이 넘어 들어오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기에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수 있는 거야?" 라며 되묻던 그 사람에게 멎적어하며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많이 보려고요" 라던 내가 있었다.
당연히 여행이 좋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걷는 그 여행이 그때는 더 좋았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걸으면서 하나하나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보고 체험할 때의 그 희열이 컸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래 보자고.
꽉 찬 일정을 마친 후, 그날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잠자리에 들 때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그 풍경들과 그 감격이 오랫동안 남아서도 더욱 그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