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흰 피부에 검은 단발머리를 했다. 큰 눈, 오뚝한 코, 얇은 입. 마른 몸매와 꽤 작은 키를 가지고 있다. 웃을 때 수줍음이 많아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이 동네 학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소에 거친 언행을 좋아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큰 소리를 높이는 선생님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의 수업시간은 굵직한 목소리로 잠을 불러온다. 학생들 중에 그녀의 아버지의 수업에 잠을 자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 물론, 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선생님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그녀에게는 무척 엄격한 아버지다. 그녀에게 회초리를 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딸이 자신의 학교 학생이기에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조용히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이다. 물론 공부를 정말 잘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업에 오는 선생님들의 수업에 집중하여 열심히 들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진 학생이다. 아버지가 선생님인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통금시간을 매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통금시간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그래봤자 수업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야간 수업을 하고 나면, 곧바로 집으로 오는 날이 대다수였지만, 가끔 친구들과 밤에 야간 수업을 끝나고 같이 어울려 놀이터나 집 근처에서 수다를 떨고 함께 야식을 시켜 먹는 일조차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학교 끝나자마자 무조건 집에 와 있어야 하는 통금 시간을 꼭 지켜야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말을 잘 들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대입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에서도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부탁을 한다
"저에게도 저녁에 친구들과 조금 놀 시간을 주세요."
그녀의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한다.
"여자가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다."
불만이 불만대로 섞였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었다. 그날, 반 친구들은 시험을 마치고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으며 늦게까지 수다도 떨고 함께 모이기로 했다. 그녀도 반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단호했다.
"시험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너라."
그런데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어기기로 결심했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며, 게임도 하고, 남녀 반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늦은 시간이 되었고, 일부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동네 놀이터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다급하게 말한다.
"너 들어가 봐야 하지 않아? 선생님의 통금시간이 있잖아."
그런 친구들의 말에도 그녀가 오늘은 결심한 듯 말한다.
"오늘만은 늦게까지 너희와 함께 할 거야."
그녀는 아마 아버지는 오늘은 늦으실 거라 예상했다. 오늘은 모의고사 채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며 있었는데, 갑자기 불량배들이 그들이 있는 놀이터로 왔다. 남자애들에게 돈을 뺏기 시작하던 불량배들이 여자애들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치근덕거리는 불량배에게 걸린 사람이 그녀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던 가운데, 처음에 돈을 빼앗겼던 남자아이가 다른 동네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얼마 후, 오토바이를 탄 반항아인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자, 그가 재빨리 달려 동네 놀이터로 왔고, 그곳에서 그녀에게 치근덕거리고 친구들의 돈을 빼앗는 불량배들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사이, 반 친구들이 근처 학교로 선생님을 부르러 가고, 경찰이 오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안전하게 일단락되었지만, 오토바이를 몰고 온 그의 모습이 선생님과 친구들, 경찰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울면서 경찰서로 끌려가는 그 친구를 바라봐야 했다. 평소에 서로 말을 잘하지 않았던 그는 그녀와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도와준 그 친구가 결국 경찰서에 끌려가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이 일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 그에게 정학처분이 내려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자, 그녀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노트를 정리하여 그의 집에 찾아가 그에게 전달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용돈을 모아 작게나마 먹을 것을 사 가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정학을 맞은 그에게 살뜰하게 대하는 그녀다. 그런 그녀를 계속 보게 되자, 처음에는 차가웠던 그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또 왔어? 잘 먹을게."
"고마워 “
자신이 알던 모습과 다른, 그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 그녀는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마침내 학교로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평소에는 보지 못한 함박미소가 번진다.
"너 왔구나. 다행이야."
이제 학교로 돌아오면 다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될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에 잘 보이지도 않는 밝은 미소까지 보인 그다.
그렇게 그녀는 그와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자주 만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도와주기 시작하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가 꽤 깊어졌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이 결국 사귀기까지 한다.
모두에게 비밀로 한, 통금시간이 정해진 만남이었지만, 둘은 "혹시 너희 둘이 사귀는 거 아니야?"라는 친구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얘가 은인이잖아. 그래서 잘해주는 거야." 라거나, "얘 때문에 내가 정학까지 먹었는데, 얘가 내 숙제정도는 도와줘야 되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며, 만남을 계속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졌던 그가 이제 그녀는 너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6개월을 몰래 사귀면서 그녀가 그에게 말한다.
"이제 6개월 남았어. 열심히 공부해서 어른이 빨리 되자."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 나는 어른 싫던데."
"어른이 돼야 우리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잖아?"
"그러기 위해서라면, 어른이 빨리 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는걸!"
두 사람은 비밀 연애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기로 다짐한다. 조만간 자신들이 이 대학입시의 시간들을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들의 관계를 온전히 이어갈 수 있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서로 좋아하는 그들의 비밀 연애가 어른이 돼서도 오랫동안 계속되길, 그리고 첫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과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