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 콜드콜 회고
어느 순간부터 문의가 아니라, 침묵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고객이 화를 내며 연락해오는 게 아니라, 아무 말 없이 멈춰 있는 상태.
앱을 쓰다 말고, 다음으로 가지 않는 상태.
핀테크 서비스에서 이 침묵은 꽤 위험하다.
불편하다는 신호라기보다, 신뢰가 흔들렸다는 신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CX 일을 하면서 처음엔 그게 잘 안 보였다. 문의가 들어오면 대응하면 됐고, 불만이 쌓이면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생기는 순간보다 문제가 생겼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있는 회사는 해외송금과 커머스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핀테크에 더 집중되어있는 회사이다. 주요 고객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며 다국어 서비스를 지원한다. 포인트, 송금, 월렛, 결제, 유심, 커머스까지 전부 돈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고객이 멈추는 이유도 단순하지 않았다. 헷갈림, 불안, 의심,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그 짧은 순간에 고객은 앱을 닫는다.
다국어 CX를 운영하면서, 언어는 달라도 막히는 지점은 꽤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퍼널과 신뢰가 흔들리는 지점이었다. 그래서 문의를 언어별로 보기보다, 퍼널별로 보기 시작했다.
고객이 지금 앱에서 어떤 금융 행동을 하려다 멈췄는지. 포인트를 쓰려다 멈춘 고객은, 혜택이 아니라 조건에서 멈췄다. 이 포인트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언제 사라지는지, 실수로 소진되지는 않는지. 금액이 크지 않아도, 돈이 걸린 순간 고객은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앱 이용안내 화면에서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고객은, 기능을 몰라서라기보다 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는 있었지만, 결정을 밀어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국내송금을 시도하다 멈춘 고객은 계좌 정보나 인증 단계 앞에서 멈췄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시 시도해도 괜찮은지, 혹시 중복으로 처리되지는 않는지. 짧은 망설임이 그대로 이탈로 이어졌다.
해외송금 단계에서 막힌 고객은 더 복잡했다. 입력값 하나, 인증 절차 하나가 지연이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고객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가,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앱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월렛에서 잔액을 확인하고 멈춘 고객은 다음 행동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송금할지, 보관할지, 출금할지. 선택지가 많을수록 고객은 더 오래 머물렀고, 그만큼 더 자주 떠났다.
커머스샵에서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빠진 고객은 가격보다 결제 과정에 대한 불안이 컸다. 이 결제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지, 환불은 가능한지, 문제가 생기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결제 버튼 앞에서 가장 많은 침묵이 발생했다.
유심 개통 과정에서 흐름이 끊긴 고객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걱정했다. 다시 개통할 수 있는지, 번호가 사라지지는 않는지,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한국전용월렛 설정을 마치지 못한 고객은, 이게 필수인지 선택인지조차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정 하나가 송금이나 계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고객은 일단 멈춘다.
이 지점들은 대부분 문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이탈로 끝났다.
그래서 퍼널별로 기준을 잡았다. 이 단계에서 이런 행동이 발생하면,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기준. 그리고 그 기준에 걸리면, 콜드콜을 진행했다.
콜드콜의 1차 옵션은 전화였다.
고객이 부재중일 경우에는, 2차 옵션으로 SMS 문자와 채널톡 메시지를 동시에 발송했다. 연락 수단을 나누는 이유는 단순했다. 고객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채널을 열어볼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했던 건, 그냥 연락을 남기는 게 아니었다.
다국어 기준으로, 고객이 해당 퍼널에서 겪고 있을 문제를 미리 예측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이 단계에서 가장 많이 막히는 지점, 가장 많이 걱정하는 포인트를 기준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이 단계에서 많이 헷갈리시는 부분이 있어 안내드립니다.”
“실패되더라도 금액이 사라지지 않는 구간입니다.”
이렇게 남긴 메시지는, 단순한 안내라기보다 고객의 불안을 먼저 언어로 꺼내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이 방식으로 얻은 이득도 분명히 있었다. 문제 해결 속도는 빨라졌고, 불필요한 재문의도 줄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건, 고객이 정확히 어디에서 문제를 만나고, 언제 앱을 떠나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의 데이터만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구간들이, 콜드콜과 메시지를 통해 드러났다. 고객은 말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는 이미 충분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실히 느낀 게 있다.
핀테크에서 CX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문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CX에서 내가 해온 일들은 점점 사후 대응에서 사전 개입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고객이 망설이는 정확한 순간을 먼저 포착하는 쪽으로.
이 글은, CX를 맡아오며 핀테크 서비스의 퍼널을 기준으로 콜드콜과 다국어 메시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했던 경험에 대한 기록이다. 완벽한 답은 아니었고, 지금 보면 부족한 점도 많다. 그래도 그때 그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에 가까웠다고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