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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Jan 16. 2019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1

아침의 피아노 / 해은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는 미화 작가님과 함께 콘텐츠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냉온의 차이가 큰 두 작가가 월 수 금요일마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2019년 1월 9일 수요일부터 배달되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댓글, 혹은 eun10532@naver.com를 통해 무료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더 읽히고 싶은 저희의 눈 밝은 독자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요일: 해은의 ‘산 책과 걷는 시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an Editorial (B) 산 책과 걷는 시간 #1 아침의 피아노 / 해은



아침의 피아노 : 기다리는 마음


  언젠가는 읽겠지 라는 생각으로 가방에 책을 넣어두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가방을 이삼일에 한번 꼴로 바꿔 드는 와중에도 책을 필수 소지품처럼 옮겨 놓는 나 같은 이도 있을 테다. 물론 파우치나 지갑, 핸드폰 등 가방 속 동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 구경을 하는 동안 책은 얼마간 가방을 옮겨 다니며 애꿎은 귀퉁이만 닳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외출길마다 책 챙기기를 그만 두지 않는 나의 집요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하철 플랫폼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약속장소에서 나는 종종 가방을 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흘러가는 무명(無名)의 시간 틈에서 책을 읽어왔다. 모든 기다림마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유독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이 이어질 때면 자연스레 가방을 더듬었다. 책은 귀를 쫑긋 기울이게 만드는 수다쟁이 친구 같았다. 어느 날에는 마냥 듣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여 향이 좋은 차 한 잔을 사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덮으면 어느새 기다림은 끝나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견디기 힘든 기다림이 미리부터 정해져 있었다. 겨울이 제철이라는 방어, 그것도 대방어회를 먹기 위한 모임이 급하게 꾸려졌는데 문제는 평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달려가도 꼭 두세 팀 정도는 제 앞에 서 있더라는 인기 절정의 횟집을 우리도 한 번 정복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마침 무리에서 반 백수로 지내고 있는 내가 친구들의 전광석화 같은 퇴근을 기원하며 기다림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지만 모든 일행이 도착한 뒷사람들을 먼저 보내며 두어 시간을 서있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요일의 횟집은 그야말로 生의 기운이 넘쳤다. 초저녁 하늘 빛깔의 수조에는 이름 모를 생선들이 부지런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몇몇은 제 힘을 주체 못하고 튀어 올라 밑에 있던 수조로 풍덩 빠지기도 했다. 이따금씩 밖으로 나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순서를 체크하던 아주머니는 불쑥 뜰채로 수조를 탕탕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방어는 힘이 너무 세서 수조를 열어두면 저기 차도에 뛰어드는 건 일도 아니에요.” 서너 개의 수조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코끝에 닿는 생경한 비린내도 바닷가의 그것인 냥 시원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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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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