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청소, 《아무튼, 계속》
도통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사이 서른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득해진 날들의 빈칸을 유의미하게 채워보고자, 어쩌면 마지막 취미기 될 책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걸으며 말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매주 한 권의 책을 사고 일주일 동안 낯선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저야 대부분 서울 한복판을 걷겠지만, 언젠가 런던을 산책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부모의 여러 면면 중 유독 끔찍하게 여겨온 모습을 머리가 다 자란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그때의 기분은 참 복잡 미묘하다. 이것이야말로 유전자의 힘인가, 비로소 체감하다가도 결국 이럴 거라면 어린 날의 나는 왜 그리도 제 창조주들에게 악다구니를 써댔나 이내 허탈해지고 만다. 그중 가장 넌덜머리가 나는 기억을 꼽자면 바로 엄마의 지긋지긋한 결벽증이다. 엄마는 우선 하루에 두 번씩 걸레를 적셔 집안 구석구석을 훔쳤다. 안방 한 켠에 진공청소기가 멀뚱히 서 있었지만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처럼 당장은 무용한 것과 다름없었다. 차라리 텔레토비에서 막무가내로 간식을 먹어치우는 로봇 푸푸가 더 쓸모 있어 보인다고, 어린 나는 한 손에는 접시를 받치고 다른 손으론 과자를 조심스럽게 먹으며 생각하곤 했다.
한창 ‘나나’나 ‘뽀’를 좋아할 무렵부터 나는 자연스레 과자 부스러기를 최소화하며 베어 먹는 법을 터득했다. 이왕이면 한 입에 먹는 게 엄마와 나의 정신건강에 좋았을 테지만 당시의 입 크기로는 어림없었다. (그때의 버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 어지간한 크기의 감자칩은 입을 무리하게 벌려서라도 한 입에 넣고 씹는다.) 웨하스나 쿠크다스처럼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엄마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과자는 선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먹기 어려웠다.
걸레와 함께 엄마의 또 다른 용병은 투명 박스 테이프였다. 나는 엄마가 매일같이 경건하게 두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는 모습보다 아침과 저녁 사이 수차례씩 테이프를 찍찍 거리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게 더욱 못마땅했다. 뭐랄까, 걸레질은 차라리 어떤 의식처럼 느껴져서 참아줄(?) 여지가 있었다. 어김없이 화장실에서 걸레 적시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어지간해서는 있던 자리를 옮기지 않고 엄마의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엄마가 네 살 난 나를 선반 위에 앉혀 놓고선 “엄마 청소가 끝날 때까지 내려오면 안 된다”고 말한 일화는 물론 내 기억에는 없지만 친척들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용케도 떼를 쓰거나 객기를 부리지 않고 그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얌전히 앉아 있던 제 모습이 무의식에 새겨졌던 걸까. 아무튼 나는 엄마의 청소를 ‘존중’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럼에도 테이프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병적으로 먼지를 떼어내는 엄마의 예민함은 때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빠와 나의 맨발바닥까지 미치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아빠가 어떻게 미치지 않고 엄마를 견디며 살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건 지금도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혹은 나와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할 만큼 게을러졌고, 은퇴를 앞둔 아빠는 엄마의 청소 주기가 조금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용한 청소기를 홀로 돌리고 있다.
이제와 엄마의 유난함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한 스무 살, 한 학기가 지나갈 즈음 대부분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나를 조롱하고 있었으니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혜은이네 집에는 초대장 없이는 갈 수가 없어.” “벨 누르기 전에 머리부터 묶어야 하는 거 알지? 단발이면 더 좋고.” “과자는 출입금지고 배달음식도 시켜먹을 수가 없으니까 그냥 우리 집으로 모이자.” 우스갯소리 같겠지만 대부분 사실인 오랜 조롱은 지금도 거의 유효하다. 물론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면서 자기는 적어도 사람을 초대하는 건 좋아했다고 나의 매정함을 나무라곤 한다. 그러면 어쩌다가 나는 하루에 두 번씩 정전기포를 덧댄 밀대로 집안의 먼지를 끌어 모으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째서 침대 매트리스의 드러난 바깥 부분에 투명 박스 테이프를 말아서 붙여 놓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걸까. 어쩌자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거실의 카펫을 청소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 보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은데.
못난 의문은 《아무튼, 계속》을 읽으면서 비로소 해결되었다. 아니, 해답을 찾았다기보다는 청소나 정리에 대한 집착을 꽤 그럴싸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일상지론에 의하면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했던 기이함이 전부 일상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나의 루틴인 셈이었다. 청소뿐만 아니라 요일별로 정해놓은 집안일 따위를 순서대로 처리해나갈 때의 쾌감과 이어지는 평온을 작가는 일찍이 체감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나(와 엄마)만 미친 게 아니었구나! 나는 작게 전율했다.
한편 6개월 동안 일간 연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펴낸 이슬아 작가는 최근 한 북토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리랜서들은 집을 내 일터로 만들기 위해 청소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내 가슴에 찍찍이처럼 찰싹 붙었다 떼어졌다. 글쓰기의 항상성을 몸소 보여준 그녀가 전한 말이라 나는 한 번 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풍경과 오브제는 아주 다르지만 집에 들어설 때 마주하는 기분만은 이제 막 체크인 한 호텔룸을 들어설 때와 같은, 나의 피곤하고 사랑스러운 집을 둘러본다. 이곳에서 꼭 내 마음 같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작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애써 찾아내도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남아 있다. 평화로운 적요 속에 머무는 것도 잠시, 나는 돌연 멀쩡한 책장을 들어내어 알라딘에 내다팔 중고책을 솎아내거나 당연히 계절에 맞게 정리해놓은 옷장을 괜히 열어놓고선 허점을 찾아내본다. 그래,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었지. 이런 종류가 어떤 종류인지 설명할 틈도 없이 금세 우울해지고 만다.
애초부터 일상을 지키기 위한 루틴으로써의 청소를 해왔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의미라면 열일곱부터 13년 째 매일 밤 일기를 쓴다든가 (드물게 만취상태로 귀가하지 않고서야) 가능한 한 음주 후에도 취침 전 15분 스트레칭의 실천을 꼽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는 푸릇이 있어야 한다고 가져다 놓은 화분 세 개를 애정 없이도 5년 째 무사히 돌보고 있는 것이나 샤워를 마친 뒤에는 다음날 입을 옷, 가방, 신발과 동행할 책의 후보까지도 정해놓는 것도 더해볼 수 있겠다. 장담컨대 앞서 나열한 목록을 수행할 때 나는 어떤 피로도 느끼지 못한다. 피곤은 애초부터 이것들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튼, 계속》의 저자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자기가 만든 루틴을 지키는 데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그건 평온한 일상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그러니 잔기술에 앞서 스스로를 항상성이 높은 체질로 바꿔야 한다’고.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게 청소는 일상의 견고함을 사수하기 위한 애정 어린 루틴이 아니었다고.그동안 청결과 편리함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 바는 높지만 절반은 제 강박을 증명하는 것에 가까운 일종의 질병 호소였다고. 관성이 붙어버린 청소가 도리어 일상에 균열을 낼 때, 불행은 이미 습관이 되어있었는지 모른다.
책상 다리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아무렇게나 구겨 던져보지만 보기 좋게 손바닥에 붙어버렸다. 달아나지 못하는 꼴이 꼭 지금 내 모습 같아서 우습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도 관성이 붙을까 나는 조금 무서워진다.
*이 글은 작가 프로젝트 [an Editorial] 1월 넷째 주에 실린 원고입니다. 2019년 1월부터 2월까지 메일 발송을 통해 진행되었던 해당 프로젝트는 현재 마감되었으며, 제 브런치를 통해서 매주 도서 리뷰 형태로 게시될 예정입니다. (2019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