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혈관이 아주 가는 탓에 드물게 팔에 주사를 꽂아야 할 때면 늘 긴장하는데, 오늘 병원에서 만난 간호 선생님께서는 내 팔을 보며 조금 갸우뚱하더니 한 방에 주사를 놔주셔서 아픈 와중에 큰 안도가 됐다. 그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혈관이 참 가늘어요. 키도 크고. 키가 몇이에요?”
“네, 그런데도 한 번에 잘 놔주셔서 감사해요. 키는 백칠십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어머 우리 딸도 고3인데, 키가 비슷한 것 같아서. 환자분보다 조금 더 크긴 하지만.”
“아 그렇구나. 요즘 친구들은 워낙 성장도 빠르고 또 크죠.”
“우리 딸은 백칠십일인데 어디 가서 백칠십이라고 말하라고 해요. 여자가 너무 크면 좀 그러니까~”
나는 조금 멈칫했지만 왼쪽 팔뚝 안쪽에 반듯한 테이프로 안정감 있게 고정된 주삿바늘 덕분인지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로 대답해버렸다. 빈정거릴 의도도, 그럴 힘도 없었지만 염증 때문에 목소리가 갈라져서 오히려 나는 조금 울컥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저희 엄마랑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엄마도 저 어렸을 땐 꼭 백육십팔이나 구라고 말하라고 했거든요.”
“어머 그래요? 호호호, 그럼 한 시간 동안 푹 쉬어요.”
나는 우리 엄마보다 열다섯 살 정도는 어려 보이는 간호 선생님이 키가 큰 고3 딸에게 작게 핀잔주는 모습을, 그 앞에서 뾰로통해질 앳된 얼굴을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지금도 엄마들에게 170과 168-9, 그리고 171과 170의 차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기에. 피곤한 생각은 그만하고 싶었다.
무거운 약봉지를 들고 건물을 빠져나오니 길목마다 예쁜 계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호위를 받으면서, 간호사 어머니의 우스운 생각과는 무관하게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잠시 바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