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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Apr 06. 2017

[베를린 살이] Gesundheit!

건강하세요!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Bauhaus Archiv)

독일 미학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바우하우스 학교의 정신을 잇는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미술관. 어느새 뮤지엄 패스권 사용 마지막 날, 모더니티와 다양성 그리고 관용을 상징하는 이곳을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필요한 세 가지가 아닌가. 

상시전이 아닌 만큼 전시 소개는 차치하고-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의 카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까만 의자인데 왜 이리도 편한지. 까무룩 낮잠이 들 뻔했다. 생과일도 아닌 오렌지 주스 300ml를 3,000원 넘게 주고 마시고, 겨우 카페 의자의 안락함에 감탄하는 이 시간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행복했다. 내가 두 장의 엽서와 시원한 음료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날이 흐린 와중에 이따금씩 비치는 햇빛이 이미 이곳의 테이블과 의자를 적당히 데워놓았고, 그 적당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 까닭 없는 행복에 소름이 돋고 이내 다시 몸이 따뜻해지고…….

 



오늘의 두 번째 코스. 베를리니쉐 갤러리(Berlinische Galerie)에 도착했다. 확실히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이 더 내 취향이다. 3D보다 2D에 더 마음을 뺏기는 타입인 건가? (이상한 흐름이다) 이곳은 색감이 예쁜 그림들의 전시가 한창이었는데, 사진을 바탕으로 한 콜라주 작품도 아주 재미있었다.


사실은 단상의 누군가에게 엿 먹으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 혹은 특정 상황에 찬성하거나 그로 인해 수혜를 입은 자들을 엿 먹으라고 하는 것 같은 사진이 특히 좋았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교황님의 말씀마다 별빛이 터진다. 블랙코미디 같은 섹션이었다.

뮤지엄 패스의 마지막 일정으로 베를리니쉐 갤러리를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 머리를 땋은 소녀, 숙녀, 할머니의 뒤에는 작은 수레가 따라오고 있다.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는 이 수레를 어디로 운반하는 걸까, 이 수레는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 운명인 걸까 상상했다. 종래에는 수레를 버려버리고 싶은 건지로 모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침 작가의 해석이 달려 있었다.


"I believe the future is behind the her, because the child, symbolized by the child's wagon, is the future, after all. Really it should be in front , but you are always dragging the past behind you."


결국, 미래는 과거라는 수레에 담겨 오는 걸까.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말은 과거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안심이구나.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옆 카페 DIX에서 첫 끼니를 해결했다. 남이 만들어주는 따뜻한 음식이 그리웠다. 맛있어서 고마웠어요. 나이가 들수록 정신보다 육체를 돌보게 된다. 그만큼 의지가 약해진 탓도 있겠으나, 몸이 까라지는데 건강한 글이 나올 리 없다. 그래서 내가 습작생으로만 남는 건가?


어딘가 모르게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내 여행.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오히려 더 큰 예민함을 낳고 있다. 다행히도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 반듯한 사각형 건물을 벗어나 제 멋대로 뻗어 있는 거리로 나가면 내 오장육부는 다시 또 두근거리겠지. 




지하철 라인 색깔과 발음이 예뻐 찍어본 역. 본토 발음으로 들으면 더 좋다.

고장 난 나침반 같은 여행. 느낌 가는 대로 지하철을 타고 왔더니, 어느새 미테(Mitte)의 쇼핑구역에 다다랐다. 미테를 제대로 둘러볼 일정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맛보기로 거리를 좀 걸었다. 

해피 리더도 되고 싶고, 프라이탁 형들처럼 힙한 베를리너도 되고 싶은 나. 문득 박물관 기념품 숍에서 보았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If you can't make it in Berlin You won't make it an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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